렉시 "무대에선 몸이 쉬 달궈져요"

2007-04-18     연합뉴스

    

살짝 붉은 기운이 감도는 레이어드(Layered) 커트. '루즈 컨트롤(Lose Control)' '핫 보이즈(Hot Boyz)' 뮤직비디오 속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이 스친다. 물론 엘리엇은 짙은 흑발이었지만. 화장기 없는 '쌩얼'로 나타난 렉시(본명 황효숙)는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후훗"하고 웃어버린다.

무대에서 뿜어낸 카리스마는 '바닥을 쳤다'. 톰보이 같은 귀여움이라니…. "제발 가식 좀 떨어보라"고 등을 떼밀고 싶다. 그러나 "그냥 말 편하게 해도 되죠?" 하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렉시의 3집은 전작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 보컬을 덜어내고 탄성 있는 랩을 눌러담았다.

클럽 바닥에 운동화를 문지르며 한 손으론 허공을 가르고 어깨는 그루브를 즐기기 딱 좋은 음악. 강한 멜로디와 잘게 쪼개진 비트가 속도감을 품었다. 음표가 톡톡 튀어오르는 듯하다.

타이틀인 트랜스 리믹스곡 '하늘 위로'는 손을 뻗고 '점프! 점프!'를 외치고 싶을 정도. '겟 업(Get Up)' '러시(Rush)' '힛 디스 파티(Hit This Party)'까지 오랜만에 일관성 있는 음반이다.

2집 당시 렉시는 보컬 비중을 대폭 늘렸으나 반응은 아쉬웠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이사의 말을 빌리면 "실패한, 망한 음반"이다.

"양 이사님이 '음반 접자'는 한마디에 활동을 중단했죠. 성대결절로도 고생했고요. 그때 이후 노래에 배신감을 느꼈죠. 다신 노래 안 하겠다고 굳은 마음도 먹었어요. 꽥꽥 소리를 지르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알고 보니 그때 발성은 틀렸더군요. 그래서 성대에도 무리가 갔나봐요."

2집 때는 준비 과정부터 힘들었다. 집안에도 불운이 닥쳤다. 그를 지탱해준 건 신앙. 원래 가톨릭 신자이던 그는 2005년 말부터 이모를 따라 개신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2집 준비 당시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음반은 잘 안됐고. 지난해엔 정말 힘들었죠. 나중에 가스펠이라도 불러야겠단 생각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어요. 신앙을 통해 욕심을 버리니 전작의 실패에 대한 부담도 사라졌어요. 목소리도 더 잘나오고."

미국 출신 페리(Perry)와의 녹음은 수월했다. YG에서도 렉시와 최고의 궁합으로 꼽힌다. 이현우 등의 음반에 래퍼로 참여하던 때 양 이사의 눈에 띄어 99년부터 YG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페리와 맺은 인연만 8년째. 렉시가 작사한 '베이비 보이(Baby Boy)'는 15분 만에 녹음을 마쳤다.

페리는 녹음 내내 "퍼펙트, 좋아, 굿"이라며 칭찬했다. "단점을 리얼하게 짚어내는 천재 작곡가 페리에게 인정받은 게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고 한다.

여자 가수들의 '섹시 코드 광풍(狂風)'이 일고 있는 가운데 렉시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졌다.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렉시의 팬 대다수가 여성 팬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2집 때는 섹시한 척을 했다"는 그는 "여느 여자 가수들과 다를 바가 없어 실망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속이 여려 잘 운다는 점에선 천상 여자지만 야망은 남자보다도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정서상 여자가 선머슴처럼 남성성을 강조할 경우 거부감을 줄 수 있어 경계하고 있다고. 성별(性別)의 경계를 잘 넘나들겠다는 뜻이다.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저보고 여자이기를 포기한 애래요(웃음). 무대에서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데 공연하다 속눈썹이 귀찮으면 떼어내 버리거든요. 양 이사님은 '제발 흥분 좀 하지 마라. 무대에서 너무 흥분해 짜증난다'고 하세요. 원래 땀을 많이 안 흘렸는데 스케줄이 많아진 2004년부터 밴에서 눈 붙이고 무대에 올라가 순간적으로 몸이 데워지는 걸 반복했기 때문인가봐요. 전 무대에서 너무 몸이 쉬 달궈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