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개인정보 보호 '구멍'..대리인에게 통화내역 줄줄
본인의 사전동의를 받지 않은 대리인의 요청에 통화요금내역을 무작정 제공한 이동통신사가 개인정보 노출당한 명의자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위임장등을 소지하지 않았더라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통화 요금 내역을 알려주는 현재의 통신사 시스템에 헛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통사 측은 위험도 높은 개인정보를 대리인이 이미 알고 있어 본인 확인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해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 역시 '정보를 제공한 이통사보다는 본인 허락 없이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자료를 요청한 대리인에 책임이 있다'며 업체 측에 주장에 실었다.
하지만 소비자는 "최소한의 본인 동의 절차도 없이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책임이 없다는 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4일 서울 강동구 길동에 사는 최 모(남.37세)씨에 따르면 지난 11일 KT로부터 ‘요청하신 내역서 팩스발송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크게 놀랐다. 팩스로 내역서를 요청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
당황한 최 씨가 KT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최 씨가 다니는 회사 여직원이 자신도 모르게 대리인 자격으로 회사 차원의 통신비 지원을 위해 통화요금내역을 요청한 사실을 알게됐다.
최 씨는 “아무리 대리인이라 해도 본인도 모르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법이 어디있냐”며 “사전에 안내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며 어이없어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다른 이통사와 마찬가지로 당사는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 등을 위험도 높은 개인정보로 취급한다. 본인 동의 없이는 수집 불가한 개인정보로 분류해 대리인이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사전 동의' 의미에 합치되며 동시에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과 김지원 사무관은 “법인 명의 휴대폰인 경우는 문제 소지가 없지만 개인 명의인 경우 본인이 요금내역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고 이를 회사가 이통사에 접수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며 “오히려 자료를 요청한 대리인이 최 씨의 명의를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제공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책임을 면하려면 대리인이 최 씨의 개인정보를 위임받았다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 씨는 업체 측의 주장과 방통위의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만약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주민번호, 이름, 휴대폰 번호 등을 캐내 이통사에 개인정보를 요청했다면 이 경우에도 본인 동의가 있었으니 문제 없다고 큰소리 칠거냐”며 “대리인이 정보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해당 고객의 위임동의서를 요구하는 등 1차, 2차로 보안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관련 소비자전문법률사무소 ‘서로’ 김계환 변호사는 “신분증 하나만 잃어버려도 주소,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신분증을 주운 사람이 대리인을 주장할 경우 그 대리권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냐”고 반문하며 최 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이어 “이통사가 대리인을 통해 본인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 이름, 휴대폰번호 등을 근거로 하기보다는 인감증명서 또는 정보 제공 전 사전 고지를 통해 대리권을 확인하는 조치가 선행됐을 때 가능하다”며 “우리나라 3대 이통사가 이러한 절차나 근거 없이 본인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고 전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박윤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