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 다국적사 도매상 전락하나?
국내 제약사들이 미국‧유럽 등 다국적 제약사들과의 제휴로 외산 의약품 공급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침체된 약업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한 시도지만 제약사들간 ‘제 살 깎아먹기’에 이를 수 있고 자체 제품 개발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독약품은 최근 프레지니우스 카비와 제네릭 항암제 제품의 국내 마케팅 및 영업을 위한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독약품은 허가 및 약가 산정이 완료된 프레지니우스 카비의 제네릭 항암제 4개 제품의 국내 마케팅 및 판매를 담당하게 됐다.
이번에 도입되는 제품은 직장암, 결장암을 비롯한 위암과 폐암 치료제인 ‘이리노텔 주사제’, 유방암 치료제 ‘트로젯 정’ 등으로 올해 하반기 발매될 예정이다.
녹십자 역시 최근 아스트라제네카와 업무 협력을 맺고 고혈압치료제 ‘아타칸’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게 됐다.
녹십자 측은 이번 제휴로 순환기 의약품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동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웅제약도 지난해 독일계 제약 업체 베링거인겔하임과 제휴를 맺고 일반의약품에 대한 영업 및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은 베링거인겔하임의 일반의약품 7개 전 품목에 대해 국내 영업 및 유통을 담당하고 베링거인겔하임은 해당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고 있다.
이밖에 환인제약-산도스, 동화약품-노바티스, 동아제약-GSK, 한미약품-박스터 등 다수의 국내 업체들이 외국계 제약사들과 손을 잡고 외산 의약품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는 국내 제약사들이 기존에 구축한 탄탄한 영업망에 국제적으로 인기와 효과가 검증된 의약품이 맞물리면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의료 기관에 대한 유통을 책임지며 이에 따른 수수료를 거두고 외국사는 전반적인 마케팅을 기획하며 시장 확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추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외산 제약사들의 시장 장악력을 키워 줄 경우 산업 자체의 위축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결정된 품목은 항암제 등 시장성도 작고 종류도 많지 않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제휴를 통한 효과가 검증된다면 만성질환이나 다복용 일반약으로 까지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제휴를 맺은 제약사들이 판매량을 늘릴수록 외산 기업의 배만 불려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나아가 제약사가 판매 영업에만 집중할 경우 제약사 본연의 R&D등에도 소홀해질 수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이 판매 수수료 챙기기에 급급할 경우 상대적으로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등한시할 수 있다”며 “결국 다국적 제약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양우람 기자]
▲ 국내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다국적사와 판매 대행 제휴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대웅제약과 베링거인겔하임의 제휴 계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