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금지 추진, "로펌간 공직자들 좌불안석"

2011-05-24     임민희 기자
퇴직한 고위공직자들이 일정기간 동안 법무법인(로펌)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안'이 추진되면서 현재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에 몸담고 있는 전직 금융당국 수장들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현재 로펌에 재직 중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법무법인 김앤장)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광장), 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율촌) 등 수십명의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 어떤 선택을 내릴지도 주목되고 있다.

고위공직자 상당수 법률회사 취직, '전관예우' 규제될까?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간의 부적절한 유착과 비리행위가 지탄을 받자 금감원 출신들의 금융회사 감사 및 사외이사 취업 제한, 더나아가 금융위 등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의 유명 법률회사 이직으로 인한 전관예우, 회전문 인사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승부수를 띄웠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위해 지난 18일 4급 이상 공직자가 퇴직 후 일정기간 법무법인이나 세무·회계법인 등으로 취업하는 행위를 제한하겠다는 뜻을 표명, '공직자 전관예우 규제방안'을 마련해 다음 달 초 청와대에 보고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국회의원 100명이 퇴직공직자의 취업 제한 방안을 담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현행 '퇴직 전 3년 이내 소속 부서 업무'와 관련 있는 회사에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퇴직 전 5년 이내 소속 부서 업무'로 한층 강화했다.

사실 퇴직 고위공직자들의 법률회사 취업관행은 부적절한 로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금융정책 수장들의 경우 유명 로펌에 있다가 금융감독원 고위간부로 발탁되는가 하면 금감원 등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는 다시 옛 직장인 법률회사로 돌아가는 '회전문 인사 관행'의 수혜를 누려왔다.

퇴직한 고위공직자들의 상당수는 김앤장과 광장 등 대형로펌의 고문 등을 맡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지난 18일 밝힌 국내 6대 로펌에 근무 중인 퇴직 공직자들의 취업현황에 따르면 김앤장 28명, 율촌 27명, 태평양 14명, 세종과 광장 각각 10명, 화우 7명 등 총 9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공정거래위원회(19명)와 금감원 및 금융위(18명), 국세청과 관세청 출신(16명)이 절반이 넘는 54명에 달하고 있다.

한승수 전 총리 등 로펌행 택한 공직자들 '거취 주목'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직 국무총리를 비롯해 재경부 등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관료들과 금융정책당국 수장, 실무자 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한승수 전 총리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거쳐 2004년 김앤장(고문)과 첫 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신용정보 사외이사(2005년), 국무총리(2008~2009년)를 지낸 후 다시 김앤장으로 돌아와 고문직을 맡고 있다.

김용덕 전 금감위원장은 재무부를 거쳐 관세청장, 건설교통부 차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겸 금융감독원장(2007~2008년)을 지낸 후 2009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맡고 있다.

이정재 씨는 2001년부터 법무법인 율촌 고문 재직하다 금감위 위원장 겸 금감원장(2003~2004년)으로 발탁됐다가 다시 2004년부터 율촌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다.

금융계는 이번 공직자윤리법 개정 추진을 통해 그간 금융당국 고위관료들의 잘못된 인사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직을 유지하는 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예전의 회전문 인사 관행과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때문에 법안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법률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고위공직자들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로펌과 관련된 전관예우법안이 통과될 경우 고위공직자출신중 상당수가 스스로 알아서 퇴직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미영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현재 공직자윤리법 개정 분위기가 조성됐는데 6월 임시국회에서 실제로 입법화될지 지켜보고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미 취업해 있는 공직자들한테까지 소급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공정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본인판단 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자진사퇴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퇴직공직자의 로펌행은 불공정 로비 등의 의혹을 받아 왔지만 사적인 네트워크가 은밀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불법성 여부를 적발해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공직자들의 반발과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 또는 국회가 개정안 추진에 얼마만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