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간 빼 먹는12가지 '블랙셀러' 수법
사탕발림 미끼 물면 귀신에 홀린 듯 낚여..."알아야 피한다"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지갑은 텅 비어있고, 두 손에는 고가의 화장품이 가득하더군요. 그 땐 귀신에 홀렸던 건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김 모(여.20세)씨는 요즘 지갑 열기가 두렵다. ‘무료 피부관리 체험권에 당첨됐다’는 반가운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간 강남의 한 매장은 알고 보니 피부관리숍이 아닌, 화장품 판매점. 매장 직원의 설득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150만원을 결제한 후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늦은 후회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 김 씨는 “길거리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웹서핑을 하면서도 소비자를 유인하는 온갖 낚시질에 혹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정상적인 상거래를 방해하며 교묘한 수법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가는 ‘블랙셀러(악덕판매업자)’들의 횡포 역시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1372소비자상담센터>는 소비자들의 피해 예방을 위해 김 씨가 겪은 ‘전화당첨’ 상술 이외에도 ‘최면’, ‘설문조사’, ‘피라밋(Pyramid)’, ‘캐취세일(Catch Sales)’, ‘신분사칭’, ‘부업’, ‘회원권’, ‘자격증빙자’, ‘강습회’, ‘홈파티’, ‘네가티브 옵션’ 등 ‘소비자를 유혹하는 악덕상술’의 12가지 유형을 공개했다.
본지에 접수된 실제 피해제보를 통해 대표적인 악덕상술을 소개한다.
◆ 회원권 유인 상술=무료라며 회원에 가입시킨 후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하거나, 신용조회 명목으로 카드번호를 알아낸 후 일방적으로 대금을 청구하는 경우, 약관 교부 없이 일방적인 계약 체결, 할인서비스 불이행, 고의적인 청약철회 회피 등을 통해 소비자의 피해를 유발하는 악덕상술이다.
대구 효목동에 사는 홍 모(여.27세)씨는 작년 여름 S-Oil 주유소에서 주유한 뒤 6월 30일까지 2박 3일로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는 여행 경품권을 받았다.
홍 씨는 제세공과금을 내고 한 달 전에만 예약하면 언제든 추가비용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안내를 믿고 제세공과금 9만9천원을 여행사 측에 입금했다. 이 후 홍 씨는 작년 10월부터 12월 까지 두 차례 예약을 신청했으나 실패했다. 여행사 측이 “성수기라 불가하다”, “벌써 마감이 됐다”며 예약을 미룬 것.
세 번째 예약 때도 역시 여행사 측은 “예약이 폭주해 두 달 후에나 갈 수 있다”고 해 일정을 5월 15일로 미뤘다.
하지만 예약한지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홍 씨가 홈페이지에 문의하니 뜬금없이 “항공권이 있어야 우선 예약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급기야 열흘 후인 11일에는 말이 바뀌며 “성수기라 여행 예약이 취소됐다”는 문자가 발송됐다. 결국 홍 씨의 여행 계획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안내 속에 무산됐다.
홍 씨는 “대화조차 안 되는데 무작정 항공권을 끊고 예약 확정을 받으라는 회사가 어딨냐”며 “여행사만 믿고 항공권을 끊었다면 어쩔 뻔 했냐”며 황당해 했다.
한편 이 여행 경품권은 레이디투어가 발행한 것. 이 회사는 대기업 59개사와 제휴를 맺고 이 같은 경품권을 남발한 뒤 65억원에 달하는 제세공과금을 챙겨 최근 상습사기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홍 씨는 현재 유효기간 내에 여행을 갈 수 없을 것 같아 환불을 요청 중이다. 하지만 여행사 측은 “내용증명을 보내야 환불이 된다”고 맞서고 있다.
제휴 기업이었던 에스오일 관계자는 “경품 업체마다 재무제표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없어 경품 응모권 유통 전 검증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의의 피해 고객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 차원의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 신분사칭 상술=정부기관의 지원 하에 면세가격으로 책을 싸게 판다거나 ○○재단에서 국민교육을 위해 싼값으로 보급한다면서 책이나 테이프 등을 강매하거나, 유명회사 판매원을 가장한 경우등이 해당한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동문 또는 동창이라며 잡지 및 도서의 구입을 권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에 사는 김 모(여.32세)씨는 며칠 전 오후 1시께 가스회사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가스안전점검을 받게 됐다.
유니폼도 입고 있지 않았던 그 직원은 곧바로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 위의 환풍기를 들여다봤고, 김 씨에게 “환풍기를 오래 사용해서 먼지가 많이 꼈으니 지금 바로 필터를 교체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성능 향상을 위해 자주 청소해 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원의 말에 수긍한 김 씨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필터 3개와 필터 케이스, 세정액 한 박스를 14만원에 구입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남기고 간 직원을 보내고 돌아선 김 씨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스 점검 나왔다는 직원이 가스가 새는 지 확인하기는커녕 환풍기만 들여다보고 갔던 것. 혹시나 싶어 확인해보니 구매한 물건은 2만원도 넘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씨가 환불요청을 위해 직원이 알려준 번호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통이었다.
도시가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유사업체에서 점검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정상적인 영업행위’로 간주되므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정식 업체와 비슷한 전화번호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들이 착각하기 쉬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식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물건을 팔거나 수리를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다시 전문 기술자를 부를 것”이라며 “직원에게 수리비를 직접 납부하는 게 의심스럽다면 가스요금과 함께 청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 캐취세일(Catch Sales) 상술=번화가의 노상이나 터미널 등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것처럼 하여 행인들을 다방이나 차량 등으로 유인한 후, 도서, 건강식품, 화장품 및 가정용품 등을 판매하는 상술이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전 모(여.23세)씨는 4년 전 의정부역 근처에서 피부테스트를 해주겠다는 한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승합차에 오르게 됐다.
승합차 안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수 십 가지의 화장품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직수입했다는 A제품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전 씨에게 영업사원은 갖가지 화장품을 보여주면서 설명한 후 제품 구입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전 씨는 겁이 났고, 매월 3만5천원씩 10개월 간 납부하는 조건으로 35만원 상당의 화장품 세트를 덜컥 구입하게 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문제가 생겼다.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한 날부터 며칠 뒤, 피부가 가렵기 시작하더니 트러블까지 발생했던 것. 전 씨는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일주일이 지나 환불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3달 째 할부금을 납부해 왔던 전 씨는 인터넷 상에서 문제의 제품을 검색해 보고서야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대금 납부를 멈춘 전 씨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체의 협박 전화를 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A사 관계자는 “전 씨에게 화장품을 판매한 업체는 우리와 상관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본사로부터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방문판매를 통해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물건을 사놓고 반품을 요청한다고 무조건 환불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하나라도 더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