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간 빼 먹는12가지 '블랙셀러' 수법

사탕발림 미끼 물면 귀신에 홀린 듯 낚여..."알아야 피한다"

2011-05-27     김솔미기자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지갑은 텅 비어있고, 두 손에는 고가의 화장품이 가득하더군요. 그 땐 귀신에 홀렸던 건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김 모(.20)씨는 요즘 지갑 열기가 두렵다. ‘무료 피부관리 체험권에 당첨됐다는 반가운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간 강남의 한 매장은 알고 보니 피부관리숍이 아닌, 화장품 판매점. 매장 직원의 설득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150만원을 결제한 후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늦은 후회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 김 씨는 “길거리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웹서핑을 하면서도 소비자를 유인하는 온갖 낚시질에 혹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정상적인 상거래를 방해하며 교묘한 수법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가는 블랙셀러(악덕판매업자)’들의 횡포 역시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1372소비자상담센터>는 소비자들의 피해 예방을 위해 김 씨가 겪은 전화당첨상술 이외에도 최면’, ‘설문조사’, ‘피라밋(Pyramid)’, ‘캐취세일(Catch Sales)’, ‘신분사칭’, ‘부업’, ‘회원권’, ‘자격증빙자’, ‘강습회’, ‘홈파티’, ‘네가티브 옵션소비자를 유혹하는 악덕상술12가지 유형을 공개했다.

본지에 접수된 실제 피해제보를 통해 대표적인 악덕상술을 소개한다.




회원권 유인 상술=무료라며 회원에 가입시킨 후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하거나, 신용조회 명목으로 카드번호를 알아낸 후 일방적으로 대금을 청구하는 경우, 약관 교부 없이 일방적인 계약 체결, 할인서비스 불이행, 고의적인 청약철회 회피 등을 통해 소비자의 피해를 유발하는 악덕상술이다.

대구 효목동에 사는 홍 모(.27)씨는 작년 여름 S-Oil 주유소에서 주유한 뒤 630일까지 23일로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는 여행 경품권을 받았다.

홍 씨는 제세공과금을 내고 한 달 전에만 예약하면 언제든 추가비용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안내를 믿고 제세공과금 99천원을 여행사 측에 입금했다. 이 후 홍 씨는 작년 10월부터 12월 까지 두 차례 예약을 신청했으나 실패했다. 여행사 측이 성수기라 불가하다”, “벌써 마감이 됐다며 예약을 미룬 것.

세 번째 예약 때도 역시 여행사 측은 예약이 폭주해 두 달 후에나 갈 수 있다고 해 일정을 515일로 미뤘다.

하지만 예약한지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홍 씨가 홈페이지에 문의하니 뜬금없이 항공권이 있어야 우선 예약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급기야 열흘 후인 11일에는 말이 바뀌며 성수기라 여행 예약이 취소됐다는 문자가 발송됐다. 결국 홍 씨의 여행 계획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안내 속에 무산됐다.

홍 씨는 대화조차 안 되는데 무작정 항공권을 끊고 예약 확정을 받으라는 회사가 어딨냐여행사만 믿고 항공권을 끊었다면 어쩔 뻔 했냐며 황당해 했다.

한편 이 여행 경품권은 레이디투어가 발행한 것. 이 회사는 대기업 59개사와 제휴를 맺고 이 같은 경품권을 남발한 뒤 65억원에 달하는 제세공과금을 챙겨 최근 상습사기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홍 씨는 현재 유효기간 내에 여행을 갈 수 없을 것 같아 환불을 요청 중이다. 하지만 여행사 측은  내용증명을 보내야 환불이 된다고 맞서고 있다.

제휴 기업이었던 에스오일 관계자는 경품 업체마다 재무제표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없어 경품 응모권 유통 전 검증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의의 피해 고객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 차원의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신분사칭 상술=정부기관의 지원 하에 면세가격으로 책을 싸게 판다거나 ○○재단에서 국민교육을 위해 싼값으로 보급한다면서 책이나 테이프 등을 강매하거나, 유명회사 판매원을 가장한 경우등이 해당한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동문 또는 동창이라며 잡지 및 도서의 구입을 권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에 사는 김 모(.32)씨는 며칠 전 오후 1시께 가스회사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가스안전점검을 받게 됐다.

유니폼도 입고 있지 않았던 그 직원은 곧바로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 위의 환풍기를 들여다봤고, 김 씨에게 환풍기를 오래 사용해서 먼지가 많이 꼈으니 지금 바로 필터를 교체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성능 향상을 위해 자주 청소해 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원의 말에 수긍한 김 씨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필터 3개와 필터 케이스, 세정액 한 박스를 14만원에 구입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남기고 간 직원을 보내고 돌아선 김 씨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스 점검 나왔다는 직원이 가스가 새는 지 확인하기는커녕 환풍기만 들여다보고 갔던 것. 혹시나 싶어 확인해보니 구매한 물건은 2만원도 넘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씨가 환불요청을 위해 직원이 알려준 번호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통이었다.

도시가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유사업체에서 점검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정상적인 영업행위로 간주되므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정식 업체와 비슷한 전화번호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들이 착각하기 쉬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식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물건을 팔거나 수리를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다시 전문 기술자를 부를 것이라며 직원에게 수리비를 직접 납부하는 게 의심스럽다면 가스요금과 함께 청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캐취세일(Catch Sales) 상술=번화가의 노상이나 터미널 등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것처럼 하여 행인들을 다방이나 차량 등으로 유인한 후, 도서, 건강식품, 화장품 및 가정용품 등을 판매하는 상술이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전 모(.23)씨는 4년 전 의정부역 근처에서 피부테스트를 해주겠다는 한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승합차에 오르게 됐다.

승합차 안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수 십 가지의 화장품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직수입했다는 A제품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전 씨에게 영업사원은 갖가지 화장품을 보여주면서 설명한 후 제품 구입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전 씨는 겁이 났고, 매월 35천원씩 10개월 간 납부하는 조건으로 35만원 상당의 화장품 세트를 덜컥 구입하게 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문제가 생겼다.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한 날부터 며칠 뒤, 피부가 가렵기 시작하더니 트러블까지 발생했던 것. 전 씨는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일주일이 지나 환불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3달 째 할부금을 납부해 왔던 전 씨는 인터넷 상에서 문제의 제품을 검색해 보고서야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대금 납부를 멈춘 전 씨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체의 협박 전화를 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A사 관계자는 전 씨에게 화장품을 판매한 업체는 우리와 상관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본사로부터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방문판매를 통해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물건을 사놓고 반품을 요청한다고 무조건 환불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하나라도 더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