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말바꾸기와 직능 이기주의

2011-06-28     양우람 기자

“사소한 약품이라도 외국에는 동네에 약국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슈퍼에서 판매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약국이 많기 때문에)여러분들이 지금처럼 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7년 11월 25일 일산 킨텍스 국제전시장. 장내에 울러퍼진 확신에 찬 목소리에 전국에서 운집한 약 1만 6천명의 인파들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최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같은 목소리는 “국민 편익이 고려돼야 한다”, “장관은 사무관처럼 일해서는 안된다”는 질타를 쏟아냈다.

바로 요즈음 뉴스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일반약 슈퍼판매와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후보 시절 전국약사대회를 찾아 일반약 슈퍼판매를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유일한 후보였다.

경쟁 후보들이 ‘국민과의 합의’, ‘영세 약국 살리기’ 등 우회적인 화법으로 사안을 피해간데 반해 이 대통령은 명료하게도 ‘약국수’가 충분하기 때문에 부작용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어떤 약도 약국 밖에서 팔려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당시 5명의 대선 후보중 이명박 대통령에게 약사들의 가장 뜨거웠던 박수가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랬던 이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와 시민단체가 수년간 주도해오고 복지부와 약사회가 맞서오던 의약품 슈퍼판매 이슈를 '국민 편익'이란 말 한마디로 종결시켰다.

때문에 슈퍼판매 대신 약사회가 내세운 약국 5부제 운영을 검토하던 진수희 장관은 졸지에 사무관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이 대통령의 입김에 복지부는 곧바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를 통해 소화제, 드링크류 등 44개 품목의 슈퍼판매를 사실상 확정했다.

이 과정을 숨 죽여 지켜보던 약사들은 그야말로 뒷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당장 밥그릇이 줄어드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도 그렇지만 의약분업 이후 지난하게 전개되던 논란이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순식간에 마무리 됐기 때문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전의 중심에 2007년 친(親)약사적인 발언으로 환호성을 샀던 이명박 대통령이 있기에 약사들로서는 심한 ‘배신감’이 들만도 하다.

현재 약사사회는 당국의 이번 결정으로 사상 최악의 소요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다. 대한약사회 회장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집행부 임원들은 일괄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분노는 슈퍼판매를 밀어붙인 당국의 행정 자체 보다는 상당 부분 이 대통령의 개인 처신에 집중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약사들의 아킬레스건을 감싸는 듯 하더니 막상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국민 여론을 핑계로 지체없이 그것을 잘라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슈퍼판매가 허용되는 의약품 종류와 품목도 약사 대표들과의 사전 공감없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약사들의 허탈감은 배가되고 있다.

결국 약사회의 결사 항전을 불러 일으킨 요인은 일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말바꾸기와 거기에 휘둘린 당국의 지나치게 서두른 행정이다.  

약사회는 이번 일로 당장 약국 5부제를 유보키로 했다. 심야약국, 당번약국 등 약사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바탕이 되고 있는 시스템에도 동력이 떨어지게 생겼다. 

이는 곧 경질환 의약품을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반면 감기, 해열제 등 보다 긴급하게 필요한 의약품을 구하는 데에는 불편이 가중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민을 위해 급하게 서두른 정책이 오히려 국민의 발등을 찍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약사들도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는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떠한 타협도 없이 일방으로 밀어부친 수년간의 반대가 결국  '밥그릇 챙기기'란 역풍으로 휘몰아치면서 호미로 막을 사안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됐다.   

실제 대다수의 국민이 의약품 슈퍼판매를 원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대의 명분과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과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스스로 빈약한 논리와 이기주의에 함몰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된다.

분류 체계가 변경돼 상당수 의약품의 슈퍼판매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의약품 분류 작업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틀에서 보면 슈퍼판매 논의는 이제 막 장거리 달리기의 출발선에 섰다 할 수 있다.  

정부와 약사단체의 합리적인 의견 조율을 기대해 본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 만드는 신문=양우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