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부추기는 은행, 금융당국 대책은?

2011-06-27     임민희 기자

최근 물가인상과 가계빚 증가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정부가 대책마련에 돌입한 가운데 대형은행들의 과도한 외형경쟁이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돼 이에 대한 규제방안이 마련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은행권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이 각각 KB․우리․신한․하나금융지주사를 등에 업고 과점체제를 형성한 가운데 여기에 기업은행과 농협 등이 가세해 치열한 영업경쟁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들 은행은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보다는 자문형 신탁상품이나 퇴직연금 상품 등 이른바 '돈이 되는' 유사상품 출시로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경쟁력 저하 등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지주사와 관계사 임원은 물론 사외이사 영업실적까지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어 회장은 임원별 영업실적(예금과 대출, 퇴직연금, 펀드판매 등)을 그래프로 만들어 집무실에 붙여놓고 관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서 임직원의 영업실적을 직접 챙기는 모습은 은행의 과열경쟁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은행권의 실적위주의 경쟁은 결국 고객들의 피해와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대출확대' 경쟁을 벌여온 은행권에도 치명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가계부채규모는 801조4천억원, 이중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440조원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 5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의 총 가계대출 잔액은 439조 8천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주택담보대출은 293조7천억원, 신용대출은 145조3천억원을 나타냈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양도 포함)은 집단대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낮은 대출금리 수준과 은행의 대출확대 노력 등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은행들은 저금리 기조에 따른 낮은 대출금리를 내세워 대출확대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신용대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은행의 신용대출 총액은 62조6천832억원으로 전체 신용대출의 43.1%를 차지했다.

은행권의 예금금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1분기 현재 -0.92%)를 보인 데 반해 주택대출 금리는 최고 연6% 이상으로 오르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문제는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서민가계 대출자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늘어났지만 이를 상환할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가계빚은 총 801조원인데 반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287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에만 약 64조원의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경기 침체로 은행들이 만기연장을 거부할 경우 가계는 이자에 원금 상환 부담까지 지게 돼 가계파산이란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경제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

정부는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로 변동금리 비중이 90%를 웃돈다는 점에서 은행권에 고정 금리 대출의 비중을 높일 것을 유도하고 있지만 서민대출자들은 현재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이자가 싸다는 이유로 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은행대출을 받지 않게 되면 서민들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이나 불법대부업체를 찾게 돼 가계부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확대 등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대출금리는 '기준금리(CD, 코픽스)+а'로 책정되는데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 대출금리도 따라서 오를 수밖에 없다"며 "고객들이 자신의 니즈에 따라 자금조달 목적 등으로 대출을 받는 것인데 은행이 정도영업을 한다지만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과열경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유사상품 출시를 통한 출혈경쟁 우려에 대해서도 "금융은 공산품이나 IT와 같은 차별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독점상품은 있을 수 없다"며 "일각에서는 '베끼기'라고 하는데 은행들이 타은행의 상품을 벤치마킹해 유사상품을 출시하면 고객들은 자신에게 유용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장기 고정금리 실적이 낮은 데 대해 "은행에서 아무리 고정금리상품을 내놓고 고객에게 설명을 한들 선택은 고객의 몫"이라며 "고객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정금리가 유리할 수 있지만 당장 금리가 싼 변동금리를 선호하고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금융권 내에서는 은행들이 과도한 외형경쟁과 출혈경쟁을 지양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시 부채상환능력을 고려해 대출을 진행하되 무리한 대출확대나 높은 금리를 책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은행이 가계대출을 기준치보다 넘어서는 경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시 불이익이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모기지 부문 소득공제도 강화해 장기 고정금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모기지 시장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고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이번주 내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할 방침이어서 실효성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채무상환 능력 제고, 시중 유동성 관리, 가계대출 건전성 관리에 초점을 맞춰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금융기관이 가계 대출을 확대시키지 않도록 대손충당금을 높여 대출에 대한 비용부담을 지게하고 외형 확대를 제한하기 위해 신용카드 특별대책도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김진욱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간사는 "개인금융부채는 1천조 원에 달하는 반면 이를 상환할 수 있는 가계의 소득수준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이를 방치할 경우 국가경제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가계부채 대책은 서민금융 대책과 함께 수립돼야 하는데 필수지출(주거, 교육 등)을 낮춰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