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원 '허풍'에 속으면 옴짝달싹 못해"
단종모델 신제품이라 속이고 지키지 못할 서비스 남발..."증거 없쟎아" 발뺌
전자제품, 가구 등 고가의 공산품 구입 시, 제품 설명서나 AS명시된 계약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았다간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매장 직원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값비싼 물건을 구입했다가 설명과는 다른 제품임을 뒤늦게 알게 돼 본지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구두로 설명을 들었거나 서류 없이 덥썩 계약한 경우 입증 자료가 없어 도움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업체 측 역시 사실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보상을 거절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일쑤.
구입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당시 판매원이 퇴사한 경우가 태반이라 하소연할 대상조차 찾을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사업자가 제품에 대한 거짓정보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를 속여서 구매가 이루어진 경우라면 계약취소가 가능하지만 사업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할 수 없다면, 잘못을 주장할 근거자료가 없어 보상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최신제품이라며~” vs “그런 적 없어!”
8일 제주시 외도동에 사는 이 모(남.35세)씨는 최근 국내 유명 전제제품 판매점에서 직원의 허위 설명에 속아 고가의 TV를 구입했다며 본지에 도움을 청했다.
지난 3월 이 씨는 전자제품 종합쇼핑몰에서 330만원 상당의 LED TV를 구입했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자신이 구입하려던 TV는 LG전자의 최신형 제품으로 인터넷 연결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판매직원으로부터 들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제품의 시중가는 690만원이지만 3대만 50% 이상의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는 직원의 말에 혹한 이 씨는 그 자리에서 구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며칠 전 웹서핑을 하던 그는 자신이 구매한 TV가 이미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격도 이 씨가 지불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곧바로 업체 측에 항의했지만 '그럴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허위광고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이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없다보니 속수무책인 상황.
이에 대해 쇼핑몰 관계자는 “판매 직원에게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당시 고객에게는 단종될 예정인 제품이라고 설명했고, 허위로 설명한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3년 이상 근무했던 직원이라 실수했을 가능성도 적다”며 “몇 달 전 일이라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전액 환불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원목이 아니라고? 6년간 깜빡 속았네”
몇 년 전 유명 가구점에서 구입했던 가구가 원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한 소비자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사는 임 모(여.35세)씨는 2005년 수원에 있는 C가구점을 통해 서랍장 2개와 거울을 200만원에 구입했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임을 알고 망설였지만 원목은 원래 비싸다는 직원의 설명에 안심했다는 게 임 씨의 설명.
6년 후, 이사를 위해 서랍장을 옮기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벽에 부딪히며 긁힌 흔적에 톱밥이 날리고 있었던 것.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 씨는 업체 측에 문의했고, 그제야 자신이 구입했던 서랍장과 거울의 재질이 원목이 아닌, MDF(중질섬유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업체 측으로 상황을 알렸지만 '사실 확인이 어려우므로 보상은 어렵다'는 게 관계자의 답변이었다.
이 씨는 “6년 동안 원목이라고 믿고 가구를 사용해왔던 소비자는 대체 어디에다 항의해야 하는 것이냐”며 허탈해 했다.
이와 관련 가구업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직원들에게는 가구의 기본 정보를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있으며, 제품을 속여서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하며 “사실 확인도 안 된 상황에서 보상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정수기 판매직원 퇴사, AS약속도 물거품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에 사는 최 모(여.30세)씨는 몇 달 전 자신의 집에 정수기를 설치해준 영업사원이 퇴사하는 바람에 애초에 계약했던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본지에 도움을 청했다.
최 씨에 따르면 그는 당시 정수기를 구입하지 않고 정기적인 필터 교체 및 사후관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렌탈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수기 설치를 맡았던 영업사원은 최 씨가 정수기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렌탈과 동일한 AS를 제공해줄 것을 약속했다고.
게다가 정가에서 10만 원 가량 할인한 160여 만 원에 정수기를 제공해주겠다는 직원의 말에 솔깃해진 최 씨는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계약조건이 명시된 계약서도 없이 곧장 구입을 결정했다.
이후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필터교체 서비스를 받지 못한 최 씨는 본사 측에 항의한 후에야 해당 직원이 퇴사한 사실을 알게 됐다.
억울해진 최 씨는 “정수기는 위생 상 AS가 무엇보다 중요한 제품이라 정기적인 관리를 받을 수 없다면 사용하지 않는 게 낫다”며 “본사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구입 취소 요청을 했지만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정수기업체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퇴사한 직원을 찾았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계약서도 남아 있지 않아 당시 계약 조건에 대해 회사 측 책임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청약철회는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본사에서는 렌탈이 아닌, 판매한 정수기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계약이 체결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계약서를 꼼꼼하게 챙기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입장을 배려해 향후 2년 간 AS 제공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