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티폰이 국내서 발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 저녁땨 뮤ㅓ해? 날도 덩ㄴ데 시웜한거 먹으러걸랴?" ("오늘 저녁때 뭐해? 날도 더운데 시원한거 먹으러 갈래?")
서울시 강북구에 사는 정씨는 퇴근길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깜짝 놀라 다시 지웠다. 걸어가면서 문자를 보낸 탓인지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내용이 엉망이었기 때문. 넉 달 전 아이폰4를 구매한 정씨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문자를 보내거나 SNS를 이용할 때마다 자꾸 오타가 나서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스마트폰으로 짧은 문자부터 SNS 이용 및 장문의 문서편집까지 하게 되면서 터치패널 방식에 불편함을 느낀 소비자들이 쿼티폰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국내에 출시되는 스마트폰 중 쿼티자판을 장착한 기종이 거의 없어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 얇고 가벼운 제품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 제조사 입장에서 불리한 제조원가 및 AS 비용 등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쿼티폰이 뭐야?
쿼티폰이란 PC 키보드 왼쪽 첫 줄의 배열인 QWERTY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용자의 친숙도와 편의성, 그리고 문자 입력 신속성을 극대화한 형식의 휴대폰이다.
숫자를 기본으로 하는 일반 휴대폰 키패드와 형태에서 차이가 있으며 조합형 키가 아닌 까닭에 자판의 개수가 많은 반면 한정된 공간에 많은 키를 넣어야 해서 자판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
많고 작은 자판 때문에 쿼티폰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적으로 아이폰, 갤럭시S 등에 사용되는 터치패널보다 정확성이 높고 오타가 적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과거엔 PC로만 주로 작성했던 이메일, 보고서 등 장문의 문서편집과 SNS, 채팅 등 빠른 타자속도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들을 스마트폰으로 구현하게 되면서 쿼티폰의 장점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쿼티폰은 오직 수출용?
쿼티폰에 대한 필요와 그에 따른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하이엔드급 쿼티폰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의 경우 국내에서는 쿼티폰을 거의 출시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용 스마트폰 가운데 2008년 출시한 '울트라메시징2'를 제외하고는 쿼티자판을 탑재한 적이 없다. 이는 팬택도 마찬가지다.
국내 제조사 중 쿼티폰을 그나마 최근까지 출시했던 곳은 LG전자뿐이다. LG전자는 지난해 3월 첫 국산 안드로이드폰이라 불리는 '안드로원'을 쿼티자판을 달고 출시했고 두 달 후에는 '옵티머스 Q'를 선보였지만 이후 낮은 판매고를 이유로 쿼티자판을 탑재한 후속모델을 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쿼티자판이 장착된 스마트폰 국내 출시를 포기한 국내 제조사들이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연달아 새로운 쿼티폰들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3월, 제품 아래쪽에 쿼티자판이 달린 캔디바 형식의 '갤럭시 프로'를 해외에 출시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5월에 미국 통신업체인 스프린트를 통해 쿼티폰인 '리플레시니'를 출시, 미국 안전규격 기관인 UL(Underwriters Laboratories)로부터 휴대폰으로는 최초로 친환경 제품 인증을 받기도 했다. 팬택 또한 지난 6월 미국 AT&T를 통해 터치스크린 화면과 슬라이드형 쿼티자판을 지원하는 '크로스오버'를 출시해 관심을 끌었고 LG전자도 이달 말 유럽을 비롯한 30여개국에 쿼티폰인 '옵티머스 프로'를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계 관계자는 "판매량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쿼티폰에 비해 풀터치폰에 대한 수요가 훨씬 많다"며 "앞으로도 국내에서 내놓을 스마트폰에는 쿼티자판을 탑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국내 제조사들이 떠난 쿼티폰 수요를 모토로라('모토쿼티'), 소니('엑스페리아 X10 미니프로'), 림('블랙베리 토치') 등이 메우고 있으나 이미 해외에서 출시된 지 한참 지난 모델이거나 특정 소비자들을 겨냥한 제품이 대부분이라 대중들로부터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쿼티폰,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국내에서 쿼티폰이 이처럼 참패하고 있는 것은 ▲두께와 무게 면에서 불리하고, ▲한글의 우수성 때문에 터치패널도 별로 불편하지 않으며, ▲제조단가 및 AS 비용이 비싸고, ▲소비자 선호도가 낮다는 점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쿼티자판을 별도로 장착할 경우 공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까닭에 화면과 일체형인 터치패널 방식에 비해 두께와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두께와 무게 등 외적인 요소를 스마트폰의 주요 스펙으로 생각하는 국내 제조사들의 경우 터치패널 방식보다 최소 4~5mm는 늘어나는 두께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알파벳을 나열해 단어를 만드는 영어와 달리 초성·중성·종성을 조합하는 방식인 한글의 장점은 천지인 등의 숫자조합 키패드로도 충분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숫자조합 키패드의 경우 터치패널에서도 화면을 보지 않고 한 손으로도 작성이 가능해 오히려 자판에 집중해야 하는 쿼티폰보다 편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제조사 입장에서 보면 비용도 문제다. 아무래도 쿼티자판에 많은 부품이 소요되다 보니 제조원가가 늘어나고 기기구성이 복잡해지는 만큼 고장의 가능성도 커 AS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쿼티폰이라고 해서 같은 스펙의 풀터치폰에 비해 비싸게 팔기도 어려운 까닭에 기업입장에서는 휴대폰 라인업에 터치폰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 또한 낮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일전에 삼성전자에서 제품 기획을 위해 소비자 성향을 조사했을 때 국내 쿼티폰 수요가 크지 않았던 사실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쿼티폰을 이용해봤던 일부 소비자들은 "이제껏 하이엔드급으로 쿼티폰이 나온 사례가 없어 판매량만 가지고 단순비교는 불가하다"며 "제대로 된 쿼티폰을 내놓고 소비자 선호도를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 출시됐던 쿼티폰들의 경우 해외에서 출시된 지 한참 만에 들어온 까닭에 같은 기간 국내에 선보인 풀터치 스마트폰들에 비교할 때 사양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그나마 시기를 잘 맞춰 출시한 LG전자 '옵티머스 Q'의 경우 완전한 하이엔드급이 아닌데다 LG유플러스에서만 출시했음에도 불구, 단종될 때까지 12만대 이상의 나쁘지 않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최근 들어 SNS 등 자판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국내에서도 쿼티자판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반영하면 잠재수익도 이끌어낼 수 있어 좋지 않겠냐"라고 평했다.
[마이경제뉴스팀/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