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시동꺼짐 연비와 관련 없다?

제조사 '주행 중 시동꺼짐' 알고서 판매 의혹...관련규정 개선 시급

2011-08-31     서성훈 기자

출고 4개월, 주행거리 2천800km 가량 밖에 되지 않은 새 자동차의 시동이 도로주행 중 갑자스레 꺼지는 바람에 운전자가 식겁했다.

소비자는 제조사 측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시동꺼짐 현상'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차량을 판매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본사 측은 녹취파일을 증거로 제시했음에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


주행 중 시동꺼짐의 경우 자칫 대형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결함이다. 하지만 관련 규정은 소비자에게 불리해 시급한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31일 서울에 사는 황 모(여.36세)씨는 올해 4월 폭스바겐 골프 TDI 2.0모델을 3천600여만원에 구입했다.


최근 황 씨는 운전 중 도로 한복판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갑자기 계기판의 모든 불이 꺼지더니 1분쯤 후엔 엑셀레이터가 제대로 밟아지지 않았다는 것. 마침 경사가 심한 길이라 차가 뒤로 밀려 뒷 차량과 충돌할 뻔한 상황이었다고.

곧바로 24시간 긴급서비스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브레이크가 잡혀있는가?”, “기어가 N(중립)으로 되는가?” 등을 물어보면서 질문이 확인되지 않으면 견인차를 보내줄 수 없다는 설명만 돌아왔다.


황 씨는 “결국 견인차는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해 놓고서야 도착했다. 도로에서 차가 섰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받을 수가 없었다”며 기막혀했다.


업체 측은 “고객의 실수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 확인을 요청한 것이며 기본적으로 30분 내외의 시간이 걸리는데 교통사정 등의 변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업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황 씨는 “찾아보니 폭스바겐 차량에서 시동 꺼짐 현상을 겪은 운전자들이 많더라. 사실을 알면서도 판매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직원은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보통 보정작업을 해주고 나가는 데 최근 들어서 보정작업을 다 못했다”는 기막힌 대답이 돌아왔다고.

“시동이 꺼진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 아니냐, 사람이 다치고 나서 보정할 거냐”고 따져 묻자 담당 엔지니어는 “연비를 고려해 RPM을 낮춰놨는데 그게 문제가 돼 시동이 계속 꺼졌다. 모든 차량이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보정을 해준 걸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황 씨는 엔지니어와의 대화 내용을 증거자료로 녹취해 둔 상태며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차량 환불을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 관계자는 "연비를 의식해 고의적으로 RPM를 낮춰서 생긴 문제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어떤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는 지 모르지만 독일과 우리나라의 지형 등 운전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아 특별히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는 규정 상 교환이나 환불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황 씨의 차량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황 씨는 업체 측의 해명에 대해 "연비, RPM 등과 시동꺼짐의 관계를 전문가의 설명 없이 일반인인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이냐"며 "녹취자료가 없었다면 또 슬쩍 거짓말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라며 반박했다.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차량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조향·제동장치와 엔진 등 주행 및 안전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2회 이상 발생했을 경우, 12개월 이내에 중대결함 동일하자가 4회째 발생하거나 수리기간이 누계 30일(작업일수기준)을 초과한 경우 차량 교환 및 환급을 요청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보상규정에 따라 차량을 교환 받으려면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느냐”며 규정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의 이정주 회장은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을 보면 목숨을 4번 저당 잡히고 무사히 넘기면 차량을 환불, 교환해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해당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서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