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고무줄식 가계대출, 서민대출자 분통
2011-08-29 임민희 기자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에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준인 7.3%에서 관리하되, 월별 가계 대출 증가율(0.6%)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자금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관리토록 했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의 이달 가계대출은 이미 월 가이드라인인 0.6% 증가한도를 넘어 사실상 영업을 중단하고 기업대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행장 서진원)의 가계대출 잔액은 25일 현재 64조2천814억원을 기록, 7월말보다 4천270억원(0.7%) 증가했다. 우리은행(행장 이순우)의 경우 60조1천780억원으로 3천540억원(0.6%) 늘어났다.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던 농협(신용대표 김태영)의 경우 지난 17일까지 59조9천억원을 기록, 7월말(58조6천억원)과 비교해 1조3천억원 증가하며 이미 0.6% 수준을 넘긴 상황.
하나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잔액이 50조5천720억원으로 7월말(50조3천937억원) 대비 2천627억원(0.52%) 늘어나 가이드라인에 근접해 있다.
이들 은행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율 제한'을 이유로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규 가계대출을 이달 말까지 중단하고 상환능력 등이 증빙되지 않는 신용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최근에는 우리은행이 일부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고, 신한은행이 최근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금리를 0.5%포인트 올려 사실상 가계대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금융당국이 '월별 가계대출 총량 규제' 방침에서 '유연한 관리'로 한발 물러서자 은행들은 가계대출 중단 대신 주식투자 등을 위해 대출받은 고객들에 대해 기존 대출 상환을 적극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실상 금융당국이 지난 6월말 발표했던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종합대책'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시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현 5% 수준에서 2016년말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0% 수준까지 확대하고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상품 및 혼합대출 상품 개발 활성화를 유도해 가겠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정금리가 유리할 수 있지만 당장 금리가 싼 변동금리를 선호하고 있어 주택담보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기 쉽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몇몇 은행에서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홍보 미비 등으로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현재 KB국민은행(행장 민병덕)은 고정금리 상품인 ‘KB 고정금리 모기지론’과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혼합형 상품인 'FOR YOU 장기대출Ⅱ'를 판매 중이며 우리은행은 고정금리형 혼합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금리고정 모기지론'을 지난 10일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최근 금리안전모기지론(5년 이상 고정금리 적용, 이후 1년 변동 코픽스 연동형 변동금리 전환 가능)을 출시했고 외환은행은 장기ㆍ비거치 분할상환 방식의 고정금리형 상품인 ‘Yes 안심전환형 모기지론’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총량규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반발한 은행권이 '신규 가계대출 중단' 등의 극단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어 서민대출자들이 고금리의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로 쏠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6월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876조3천억원(가계대출 826조원, 판매신용 50조3천억원), 이중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은 444조3천억원으로 1분기(435조1천억원) 대비 9조2천억원 증가했다.
특히, 18일 현재 국내은행의 가계 마이너스통장 대출잔액은 43조4천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444조원)의 약 9.6%에 달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은행권이 '이기주의적 태도'를 지양하고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 당장 가계대출을 억제하기는 어려운 만큼 개인의 소득능력과 상환능력을 고려해 대출을 진행하되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장기금리대출 비중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이 만기 일시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 금지와 조기상환 수수료 부과 금지 등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 법제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