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사면초가'속 '동네북'

원유가 상승ㆍ담합 약식기소ㆍ소비자 집단소송ㆍ세금 덤터기

2007-05-29     벡상진 기자
정유업체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코너로 몰리고 있다.특히 폭리를 취한다는 소비자들의 막연한 피해의식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석유제품 가격의 가파른 고공비행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는 등 '폭리'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는 데다 검찰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의뢰에 따라 조사한 결과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3사의 경유 담합 혐의를 확인했다며 이들 3사를 약식기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전국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와 전국건설노조 조합원 526명이 이들 3사와 에쓰오일을 상대로 석유제품 가격 담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주장하며 1인당 50만원씩 모두 2억6천3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정유사들이 사상 처음 소비자들에 의해 손배소 청구를 당한 사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무엇보다 화학제품 가격 담합으로 곤욕을 치른 상황에서 "우리는 결백하다"고 했던 석유제품의 일부(경유)에 대해서 마저 검찰이 담합 혐의를 들어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약식기소를 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입장 정리에 애를 먹고 있다.

정유사들은 공정위가 검찰에 조사를 의뢰할 당시에는 "석유제품 가격 담합은 절대 없었다"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하거나 행정소송을 내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나 검찰이 이번에 공정위 일부 판단에 손을 들어주는 상황에 직면하자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조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가 경유 가격 인상을 담합한 혐의로 매긴 벌금이 SK㈜는 1억5천만원,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1억원에 불과하기에 각 업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담합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정식 재판으로 가자니 여론의 부담이 견디지 쉽지 않고, 순순히 벌금을 내자니 담합을 인정하는 꼴이 돼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번 검찰의 약식기소는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휘발유와 등유 값의 경우 담합이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데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는 공정위가 무리한 판단을 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검찰이 경유에 대해서 만큼은 담합을 확인했다며 미미한 액수이나마 벌금을 부과했기에 우리로서는 벌금을 내고 검찰의 판단을 인정하는 수순으로 가야할 지, 아니면 벌금을 내지 않고 정식 재판을 받는 수순으로 가야할 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의 관계자는 "최근 석유제품 가격이 곧 사상 최고치를 넘어설 것이라는 등의 뉴스가 나오고 가격을 올릴 때는 많이 올리고 내릴 때는 조금 내린다는 일반의 인식이 퍼지고 있는데다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지적마자 제기되니 참으로 답답하다"면서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 등이 얼마나 이익을 챙기는지는 한번 살펴봤으면 한다"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통상 휘발유 1천원 어치를 팔면 마케팅 비용 등을 제외한 순수한 '법인 이익'은 16원에서 17원 사이"라고 주장하고 "그런데도 폭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막연한 '부정적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특히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하고 업계 1, 2위 업체인 SK㈜와 GS칼텍스의 경우 세후 공장도 가격을 언론 등에 공개하고 있지만, 이 가격이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실제 가격에 비해 높고 여기서 폭리가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그렇다면 차라리 가격 공개를 하지 않겠다"며 억울해 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이 가격은 석유제품의 상승, 하락 흐름을 보여주는 표준가격일 뿐"이라면서 "그런데 이 가격보다 싼 값에 제품을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것이 폭리 논란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석유협회 관계자도 "이 가격은 말그대로 기준가격 정도로, 실제 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것 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면 '업체들이 가격 공개도 않는다'는 비판론이 더욱 비등할 것이어서 업체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름값의 57% 안팎이 세금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소비자 여론의 초점이 세금 인하에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