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 하자는 덮어 놓고 소비자 책임?
심의결과에 소비자 불만 폭발...'외관심의'로 추측성 진단 한계
보풀 발생, 탈색, 찢김 등 하자가 발생한 섬유제품의 심의 결과에 대해 소비자들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2010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섬유제품 및 세탁서비스 관련 사례 6천796건의 책임소재별 심의 결과, 제조·판매업체 책임 38.3.%, 세탁업체 책임 11.0%에 이어 소비자 책임이 무려 1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소비자 과실로 판명되는 경우는 대개 취급표시를 지키지 않았거나 착용 중 취급부주의로 인한 찢김, 터짐 등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고가의 운동화가 세탁 후 곧바로 탈색되는가 하면, 착용 일주일 만에 특정 부분에 심한 보풀이 발생한 의류에 대한 심의결과가 '취급상 부주의’란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훼손된 가방의 원인을 두고 심의기관마다 각기 다른 결과를 내놓아 소비자 분쟁 해결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하자 심의가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최대한 공정하게 심의했음에도 소비자들의 부주의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보통 의류 심의는 제품의 파손을 막기 위한 ‘외관심의(육안으로 검토)’로 이루어지다보니 추측으로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의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면 재심의를 넣거나 타 기관에 문의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 “60만원 짜리 운동화 세탁 후 누더기 됐어”
7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최 모(여.40세)씨에 따르면 그는 며칠 전 고가의 운동화 세탁을 위해 세탁전문업체 크린토피아를 찾았다.
시중 가 60만원 상당의 운동화를 살펴본 직원은 ‘세탁 시 탈색, 수축, 변형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여느 세탁소에서나 하는 의뢰적인 안내라고 생각한 최 씨는 별걱정 없이 세탁을 맡겼다.
이후 세탁소를 다시 찾은 최 씨는 자신의 운동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짙은 검정색이었던 운동화의 물이 빠져 회색빛이 돌고 있었던 것.
구입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운동화의 탈색에 황당해진 최 씨는 보상을 요청했지만 업체 측은 “일단 원상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며 거절했다.
최 씨는 “세탁 실수로 고가의 운동화가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구입가 전액은 안 되더라도 일부는 환급 해줘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크린토피아 관계자는 “세탁상의 문제인지 제품상의 문제인지는 심의기관을 통해 과실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또 “세탁 전에 이미 운동화의 탈색, 변형, 수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지를 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 씨 역시 승낙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최 씨에게 운동화를 원상회복시켜 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보상만을 요청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심의기관에 의뢰한 뒤에 세탁과실임이 밝혀져야만 원상회복 혹은 보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보풀 발생한 의류 ‘소비자 과실’…“심의 결과 못 믿겠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사는 박 모(여.35세)씨는 최근 스포츠 브랜드 네파에서 남편의 등산용 점퍼와 바지를 40만원에 구입했다.
착용 일주일 후, 점퍼 칼라 부분에 보풀이 심하게 생겼고 박 씨는 유명 브랜드인 만큼 제대로 된 사후처리를 기대하고 구입 매장을 찾았다. 옷을 상태를 살핀 매장 직원이 “심의를 통해 제품 결함을 따져 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해 박 씨는 제품하자심의를 하게 됐다.
얼마 후 매장 직원은 ‘제품 원단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음. 소비자의 취급상 부주의’라는 심의 결과를 통보했다.
착용 후 한 번도 세탁을 한 적이 없고, 일주일 동안 출퇴근 시에만 착용했을 뿐이라고 박 씨가 따져 묻자 “보풀이 발생할 수 있는 제품이다”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본 제품 구입 시 보풀발생을 어느 정도 예상한다”고 답했다.
박 씨는 “장기간 착용했을 경우 보풀 발생이 불가피하더라도, 사용기간에 비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재심의 결과 역시 ‘소비자 과실’로 나왔고 매장 측은 재심의나 보풀제거를 제안했다.
박 씨는 “구입 당시 이 사실을 전혀 안내 받지 못했고 당장 보풀을 제거해 봐야 다시 생길 게 뻔하다”며 “마찰에 의해 보풀이 심하게 일어나는 섬유로는 의류를 만들지 못하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지적했다.
이에 대해 네파 관계자는 “제품 심의 결과, 착용 시 집중 마찰에 의한 보풀 현상으로 나타났다”며 “제품 하자에 한해서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 하자 심의 믿을 수 있을까? 기관마다 ‘딴소리’
서울시 노원구 하계1동에 거주하는 이 모(여.27세)씨는 몇 달 전, 신세계백화점의 수입브랜드 편집샵에서 베이지 색상 가죽가방을 할인받아 약 130만원에 구입했다.
이 씨는 구입 당시 옅은 색상의 가죽이 쉽게 더러워질 것을 우려돼 망설였지만 “원래 이 제품은 빈티지 스타일이라 사용하면서 심한 오염은 없을 것”이라는 매장 점원의 설명에 구매를 결심했다고.
구입 후 이 씨는 혹시나 비싼 가방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길까 싶어 조심스럽게 사용했다. 두 달여가 지난 6월 중순경 퇴근길에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피해 서둘러 집에 도착한 이 씨는 가방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려다 여기저기 흉하게 남은 빗물 자국을 발견했다.
매장 담당자의 안내대로 소비자단체 심의를 받기로 했다. 2주 후 매장 측은 “소비자 부주의로 인한 오염이므로 매장에 어떠한 책임도 물 수 없다”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이 씨는 “‘가죽 제품은 변형될 수 있다'는 일반적 문구만으로는 커버될 수 없을 정도의 빗물자국”이라며 심의결과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이미 심의기관에서 고객 부주의로 판명된 상황에 업체 측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 역시 공정거래법상 위반”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 씨는 재심의 통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품 불량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심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 판매처인 신세계백화점 측이 적극적이 중재에 나서 제품가 환불을 받는 것으로 원만한 합의로 마무리됐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