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많은 '한은법 개정안' 금융계 반발로 갈길 멀어
2011-09-07 임민희 기자
한국은행(총재 김중수)에 감독기능을 부여할 경우 시장감독 기관의 위축은 물론 금융권의 거센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감독원(원장 권혁세)의 '금융권 낙하산 인사' 전횡이 한국은행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는 한은법 개정안이 사실상 한국은행 퇴직자들의 '밥줄'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통로가 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인적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한은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안정 책무 명시 ▲금융회사 조사권 강화 ▲긴급유동성 지원제도 개선 ▲ 금융채 등에 지급준비금 부과 등이다.
한국은행은 당초 은행 등 전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 검사권'을 주장했으나 금융계의 반발이 거세자 이를 포기하는 대신 은행에 대한 공동검사권 요구(공동조사 요구시 금감원이 1개월 내 응하도록 대통령령 명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도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또 은행 예금은 물론, 은행이 발행한 채권(은행채)에도 지급준비금(시중은행이 일정비율 이상 금액을 한국은행에 예치)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한국은행은 '효율적인 통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한 물가안정 도모'라는 기본 책무 외에도 '금융안정'이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됐다.
한은법 개정안은 오는 12월 시행될 예정이지만 한국은행과 감독권한을 나눠야 하는 금감원 측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금융권 역시 '또 다른 시어머니'의 등장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어 개정안 핵심쟁점에 대한 시행령 마련 작업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통화정책 실패로 가계대출 증가와 인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한 한국은행이 '감독기관'으로까지 역할을 확대한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행 측은 한은법 개정 취지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역할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금융감독기관 개수만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사실 저축은행 부실․비리 사태가 발생한 것은 감독당국의 인적․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금감원 퇴직자들의 금융회사 취업 관행으로 유착 비리 문제가 줄곧 제기됐지만 이를 감시/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전무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제재권의 금융위원회 이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필요성이 대두됐다.
정부가 3개월 동안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지난달 8일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핵심사안은 아예 빠지거나 중장기 과제로 미뤄져 '무늬만 혁신안'이란 빈축을 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감독기능'만 나눠 갖는다면 금융감독 개혁에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 퇴직자들의 금융계 진출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여파로 금감원의 낙하산 인사 관행이 전면 철폐되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전관예우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지난 6월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여전히 퇴직공직자들이 금융사나 대형로펌에 재취업해 '봐주기 검사 청탁' 등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는 관계 기관과 금융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한은법 시행령을 마련하는 한편, 한국은행의 인적 규제와 금융권과의 유착 관계를 차단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