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비 상한제' 실효성 논란 가열

삼성전자·한국닌텐도서 시행...'고장 과실여부'가 실효성 쟁점

2011-09-29     박윤아 기자

적게는 수 십 만원, 많게는 새 제품 구매가를 웃도는 가전제품 수리비에 제동을 걸 방법은 없을까?

 

삼성전자와 한국닌텐도가 자사 제품 구매촉진과 고객만족을 위해 시행 중인 '수리비 상한제'가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도는 제조사에서 미리 정한 금액 이상의 수리비용은 소비자에게 청구하지 않는다는 것. 제조사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기준 역시 업체마다 들쑥날쑥이다.

 

이 같은 제도가 등장한 배경은 첨단부품으로 무장한 가전제품의 등장과 비용절감을 위한 부품 모듈화. 

복잡한 기능의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잦은 고장이 발생, 핵심부품의 수리비가 증가하는가 하면 사소한 고장에도 높은 수리비가 청구되면서 그로 인한 소비자와 제조사 간의 갈등 역시 깊어지고 있는 상황.

국내 소비자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수리비 상한제'의 운영형태와 실효성에 대해 짚어봤다.  

 

▲종합가전제품 수리 현장
 


◆ "수리 하느니 차라리 새 제품 산다"

 

최근 수리비용의 적정성을 두고 소비자와 제조사의 갈등이 깊다. 이 같은 민원은 사실상 TV의 핵심부품인 ‘패널’과 기기들의 원가절감을 꾀한 '부품 모듈화'에 집중돼있다.

제조상의 원가 절감을 위해 세부 부품을 교환할 수 없게 세트로 만들어  그로 인한 수리비용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

특히 TV 패널 수리비의 경우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을 넘어서는 경우가 빈번해 "1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으로 수리를 하느니 차라리 새 제품을 사는 게 낫겠다"는 소비자들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경북 구미시 구평동 거주 정 모(남.35세)씨는 230만원 대에 구입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42인치 PDP평판 TV의 패널 수리비로 무려 110만원을 청구받았다. 대전 동구 가오동 거주 서 모(여.28세)씨 역시 200만원대 고사양의 소니 브라비아 평판TV를 구입하자마자 취급 부주의로 패널에 큰 균열이 생겨 수리비로 80만원을 청구 받았다.

 

악명 높은 TV패널 수리비 말고도 IT기기 부문에서도 최근 부품모듈화로 인한 수리비 과다 청구 사례가 발생했다.

 

대전 동구 자양동 거주 정 모(여.22세)씨는 델 스트릭 휴대폰을 81만원대에 구입한 후 사용 6개월만에 충전단자가 파손되며 수리비로 31만8천원을 청구받았다. 충전단자가 메인보드와 일체형으로 제작돼 충전단자의 고장에도 메인보인 부품 교체비용까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 탓이다.

◆ 한국닌텐도-삼성전자, ‘수리비 상한제’ 주목

 

현재까지 국내에서 ‘수리비 상한제’를 도입해 운영중인 대표적인 기업은 한국닌텐도와 삼성전자로 확인됐다.

 

한국닌텐도의 경우 삼성전자보다 3년 앞선 지난 2007년께부터 '닌텐도DS라이트'에 대해 핵심부품 및 부속품 등 경중을 가리지 않고 최대 6만원까지만 받는 ‘수리비 상한제’를 도입해 운영해오고 있다.

핵심부품과 부속품이 함께 고장나는 경우 기본수리비 3만원에 핵심부품 수리비 6만원이 더해져 9만원의 수리비가 청구되야 하지만 수리비 상한제에 따라 소비자는 최대 6만원까지만 지불하면 된다. 특이한 점은 고객 과실이라 할지라도 고의성이 없다고 확인될 경우 상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

한국닌텐도 관계자는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는 '바늘과 실'"이라며 "게임기가 고장나면 게임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없게돼 자발적으로 고객의 수리비 부담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부터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수리비 상한제를 도입했다.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4대 생활가전 품목을 대상으로 하면 품목별로 TV는 구입 후 3년 미만은 27만원, 5년 미만은 36만원, 7년 미만은 48만원이다.


또 냉장고와 세탁기는 구입기간에 따라 최대 10만원까지, 청소기는 최대 6만원까지만 수리비가 청구된다. 단, 소비자의 취급부주의 등 고객 과실로 인한 파손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삼성전자를 제외한 여타 가전업계는 아직까지 수리비 상한제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 유명가전업계 관계자는 ‘수리비 상한제’ 도입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 '수리비 상한제', 실효성은?

수리비 상한제가 수리비 관련 소비자 민원을 크게 잠재울 수 있을지 실효성 의혹은 남아 있다. 소비자 취급 부주의에 의한 파손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  

 

이용자 과실로 인한 파손이나 고장이라면 논란이 될 여지가 없지만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고장의 경우 '부품 내구성'을 두고 소비자와 제조사 양 측의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제보를 통해 접수되는 소비자불만의 대부분이 '제품 하자'vs'사용자 과실'을 둘러싼 분쟁이다.

 

평판TV 핵심부품인 ‘패널’관련 수리비가 바로 대표적인 케이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균열이 생기는 ‘패널’은 고의성이 없었더라도 사소한 취급 부주의에 따라 유상수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전 동구 가오동 거주 서 모(여.28세)씨는 한 손에 들고있던 리모컨으로 평판TV화면을 살짝 건드렸다가 TV패널이 ‘쫙’하고 갈라지는 바람에 소비자 취급 부주의로 80만원의 수리비를 청구받았다.

▲ 사소한 충격에 심한 균열을 보인 하는 TV패널


서 씨는 “부품 내구성이 약하다면 그만큼 고장도 쉬울 것”이라며 “내구성이 약한 부품에 대해서는 별도로 수리비 상한제의 적용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수리비 상한제'가 운영 여부를 알고 있는 소비자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운영업체 수도, 홍보도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거주 김 모(남.33세)씨 역시 본지 중재를 통해 이 제도를 알게 됐다.

김 씨는 수년간 사용해온 닌텐도DS 라이트의 수리비로 6만원이 청구되자 과도한 수리비용으로 본지로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취재결과, 김 씨의 기기는 실제 수리비용은 총 9만원이었지만 업체 측이 운영하는 '수리비 상한제'를 적용, 6만원이 청구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연합뉴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박윤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