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철 도래…오너家 승계 빨라지나
글로벌 고속성장…삼성 이재용 사장 현대 정의선 부회장 등 위상 제고
연말 정기 인사철이 도래함에 따라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빨라질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젊고 창의적인 오너 3·4세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후 때마침 한국의 대표 주요 그룹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고속성장을 이뤄내고 있어 이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일각의 불안을 불식시키고 전면 배치에 대한 명분은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연말 정기인사에서 주요 그룹 오너 3·4세의 승진 또는 보직 이동 등 인사의 향배는 해당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을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고희(古稀)를 맞은 삼성그룹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연말 그룹 임원 인사 때 부회장으로 승진하거나 더 무게감 있는 보직을 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발늦은 대응으로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최근에는 애플의 아성을 딛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이재용 사장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이 매주 두 차례 정기출근하는 등 경영 일선을 지키고 있어 "아직 승진은 이르다"는 관측과 이 회장이 69세의 고령인 만큼 이 사장으로의 중심 이동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때가 됐다"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 사장은 회사 경영 전반을 챙기면서 경영 보폭을 넓히는 동시에 최근에는 애플 창업주인 고(故)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참석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2014년까지의 부품 납품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등 경영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승진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남편인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도 승진한 지 2년이 지나 이번 인사에서 승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은 남편 김재열 제일모직 부사장과 지난해 연말 동반 승진했으나 김 부사장이 3개월 만에 빙상연맹 회장으로서의 격을 갖추기 위해 사장으로 승진한 상태여서 이번에 '같은 서열'에 오를지 주목된다.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0.64%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인데다 매각 시한이 내년 4월로 정해져 있어 경영권 승계 내지는 후계 구도가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카드가 지분 매각이 완료되면 1996년 완성된 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 핵심 계열사로 이어지는 순환형 출자 지배구조가 15년 만에 깨지고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 수직적 구조로 바뀐다.
지난해 인사를 근거로 '포스트 이건희' 구도로 이재용 사장이 삼성의 주력인 전자ㆍ금융 계열을,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와 에버랜드 등 유통ㆍ서비스 부문을,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모직ㆍ제일기획 등 소비재 및 브랜드 관리 부문을 각각 맡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입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년 8월 현대차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한 정 부회장은 전 세계 글로벌업체들의 자동차 전시 경연장인 모터쇼에서 직접 신차를 소개하는 등 현대차 기획 및 국내외 영업담당에 주력했다.
이번 인사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직 공식적인 직급은 없지만, 현대차 부회장을 넘어 기아차와 현대차를 아우르는 '총괄 부회장'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여전히 건재한 데다 '자동차 토털그룹'을 표방하는 만큼 아직까지 계열분리 등은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최재원 부회장, 최신원 SKC 회장-최창원 부회장 등 사촌 형제간 '사촌 경영'의 향배가 관심을 끈다.
재계 일각에서는 작년 말 이후 계열사의 지분 매입, 매각이 있을 때마다 최신원-창원 형제가 SKC와 SK케미칼 등을 분리해 나가는 '계열 분리'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이번 연말 인사에서 이를 위한 사전 포석 작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소그룹 형태의 책임경영은 있지만, 계열분리는 없다"고 말했다.
LG는 구본무 회장의 장남으로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근무하는 구광모 LG전자 차장의 승진 여부와 언제 귀국해 근무할지가 관심거리다.
재계에서는 구 차장이 오너 일가라도 다른 그룹과 달리 시간을 두고 승진 단계를 밟아나가는 LG의 전통을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롯데그룹과 신세계의 경우 이미 '오너 2세' 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터라 올겨울 인사에서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롯데의 신동빈 회장과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은 각각 오너 1세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이명희 회장보다 더 경영 일선에 나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다만 정 부회장이 아직 43세로 젊지만 부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가 5년이 지난 만큼 언제 '부(副)'자를 떼어낼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두산에서도 박용현 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오너 3세대가 그룹을 대표하고 있지만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등 4세대가 이미 각 계열사 경영 전면에서 뛰고 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부사장은 두산산업차량 대표를, 박용현 그룹회장의 장남인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도 메카텍BG(Business Group)를 각각 맡고 있다.
또 최근에는 박용곤 명예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지주회사 ㈜두산 지분 3.4% 가운데 2.4%를 자녀들에게 넘겨 대물림이 가속화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진그룹에는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장과 호텔사업본부장 등을 겸임하는 조현아 전무와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을 맡은 조원태 전무가 있다.
두사람 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비교적 무난하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연말 인사 때 부사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과 총수인 조양호 회장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해 자녀의 승진이 급할 것도 없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조현준 사장과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전무는 2007년 1월 나란히 승진했기 때문에 만 4년이 되는 내년 1∼2월 정기인사 때 승진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는데 이들이 나란히 승진한다면 부회장, 사장, 부사장직에 오르게 된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 허윤홍 GS건설 부장의 임원 승진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관 차장의 부장 승진 여부도 관심사다.
웅진의 경우 윤석금 회장의 아들인 윤형덕 웅진코웨이 경영기획실장과 윤새봄 웅진케미칼 경영관리팀 과장이 웅진케미칼 지분을 차곡차곡 늘려가고 있는데다 핵심 계열사의 핵심 부서에서 일하며 경영 수업도 받고 있어 2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가시화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