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등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2007-06-15     백상진기자

14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결정한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쉽게 풀어 쓰면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판과 같은 장소에 보관된 다른 경판 모두라는 뜻이다.

이 중 전자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고려왕조에서 두 번째로 만든 불교의 일체경(一體經.불교경전의 총합)이란 의미에서 고려재조대장경판(高麗再再彫大藏經板)이라고도 하는 팔만대장경판은 현존 세계 유일의 일체경 목판집이다.

현전 불경류만 해도 이제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팔만대장경이 판각되던 시기(1237-1248)만 해도 그 숫자는 만만치 않았다. 한데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불교경전을 하나로 통합하려 한 이 팔만대장경판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몇 장이며 이에 수록된 불경류는 몇 종 몇 권인지는 조사자마다, 보고서마다 차이를 보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민족대백과사전'에는 1천497종, 5천558권, 8만1천258장이라 했으나,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문화재 정보에는 1천496종, 6천568권, 8만1천258장이다. 장수는 같으나 종수와 권수가 차이가 난다.

아무튼 이 고려대장경판은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불경을 대조하고 교정, 가감, 배열한 가장 완벽한 불교문헌 목판 인쇄물로 꼽히는 것은 물론 이후 일본, 중국, 대만에서 간행된 대장경 대부분의 모본(母本)으로 군림했다.

그 보관처는 해인사 중에서도 동서로 나란히 놓인 수다라장과 법보전이다.

두 건물 사이를 막은 'ㅁ'자 모양 작은 건물이 있는데 '사간전'이란 곳으로 팔만대장경을 제외한 다른 목판들이 소장된 곳이다.

사간전은 사간판이 보관된 전(殿.건물채)이라는 뜻이다. 사간판은 한자로는 '寺刊板'이라 쓰기도 하고, '私刊板'이라고도 하는데 전자는 사찰에서 만들어낸 목판이란 뜻이며 후자는 개인이 시주해서 만든 목판이란 의미다.

해인사라고 하면 흔히 팔만대장경판을 떠올리지만, 이런 명성은 사간전에 보관된 사간판들을 왜소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간전에 소장된 사간판 또한 그 면모가 만만치 않다. 수량에서는 8만장에 이르는 고려대장경에 비해 적기는 하지만, 총수가 5천 점 이상에 이르러 이 역시 엄청나며, 나아가 이 중 54종 2천835장이 고려대장경과 같은 고려시대에 새긴 경판들이다.

이들 고려시대 경판 중에서도 다시 28종, 2천725장은 '고려각판'이라는 이름으로 국보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나머지 26종 11장은 보물 734호로 등록되어 있다. 고려각판 중에는 그 제작연대가 고려 숙종 3년(1098)인 '화엄경'이 있는가 하면, 충정왕 원년(1349)에 간행된 '화엄경약신중'도 있다. 일부는 고려대장경보다 제작연대가 빠른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조선시대 목판이다. 그 중에는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아버지와 삼촌의 문집도 포함돼 있다.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에서 '고려대장경판'과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묶여 이름을 당당히 올린 '제경판'(諸經板)이란 바로 사간전에 보관된 경판류들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은 팔만대장경에 밀린 '제경판'이란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