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힐 제일은행장, '한국 금융' 폄하해 빈축

2011-11-04     임민희 기자
리처드 힐 SC제일은행장이 한국 금융계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금융노조 등은 힐 행장이 한국 금융산업과 노사관계를 매도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힐 행장의 발언이 노사 장기 파업과 고배당 관행 등 SC제일은행에 대한 국내 금융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속에서 '정면 돌파'를 위한 승부수가 될 지, 오히려 시장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는 자충수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리처드 힐 행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전통산업에 머물러 있다"며 "한국 4대 은행과 특수은행들은 국제적 운영 능력이 제한적이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나갈 능력도 크지 않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힐 행장은 영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4시간 영업체제를 도입하고 주말에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지점 수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과 연봉제 도입의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처럼 SC제일은행도 한국 은행문화를 바꿀 자신이 있다"며 한국 금융권 혁신에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힐 행장의 발언을 두고 금융계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국내은행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한국 금융의 특성과 생리를 전혀 무시한 발언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005년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가 당시 국내 토종은행인 제일은행을 인수하면서 재탄생했지만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 국내 대형은행에 밀려 수년째 실적 감소와 시장 위축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영국의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을 이식한 새로운 모델의 은행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지만 실상 현실은 달랐던 것.

특히, 매년 실적의 절반을 넘는 고배당 관행과 고금리 대출영업 우려 등으로 빈축을 샀다. 때문에 SC제일은행이 한국에 정착하기 보다는 최대한 배당금을 챙겨 떠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SC제일은행 노사 간의 대치 상태가 계속되면서 전국 394개 지점 중 42개 지점을 일시 영업중지 했고 이중 15개는 여전히 영업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SC제일은행에 대한 고객들의 불편과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속에서 힐 행장이 자사 은행의 경영과 영업문제 보다는 '한국 금융산업의 후진성 때문'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3일 성명서를 통해 "힐 행장의 발언은 한국과 한국의 노사관계, 한국 금융산업의 긍정적 요인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이라며 "은행이란 돈 벌이 수단일 뿐이며, 한국의 금융감독시스템과 제조업에 기반한 은행의 보수적 경영, 노사관계는 돈벌이의 방해물이라는 것을 자인한 격"이라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힐 행장이 도입하려는 개별 성과연봉제와 전직원 상시 퇴출제도는 이윤 극대화를 위한 직원 죽이기와 직원 길들이기 수단일 뿐 한국 금융산업의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며 "오히려 노사관계를 황폐화시키고 무한경쟁으로 내 몰아 결국 금융산업과 국민에게 혜택 보다는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SC제일은행 노사는 성과주의 연봉제 도입, 성과향상 프로그램(SA, 후선발령제도) 대상 확대, 상설명예퇴직제도(ERP) 폐지 등을 놓고 논의 중이지만 이견 차가 커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