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형TVㆍ38 TYPE 아파트 들어 보셨나요"

내달부터 '인치ㆍ평ㆍ근' 금지…산업계 새 도량형 아이디어 속출

2007-06-17     백상진 기자
내달 1일부터 인치(inch), 평(枰), 근(斤) 등 비법정단위 도량형 사용이 전면 금지됨에 따라 이들 단위를 사용해 온 기업들이 단속을 면하면서도 소비자의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일단 도량형 통일이 정부 시책으로 추진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까지 물게 돼 기업들은 산업자원부의 지침대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비법정단위 도량형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수십 년, 수백 년 이상 전통적으로 이용해 온 도량형 표기를 갑자기 바꾸자니 혼란이 불가피해 기업들은 정부의 새로운 지침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표기법을 고안해 내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자업계는 내달 1일부터 TV의 규격을 표시하는 인치(inch)를 쓸 수 없어 카탈로그 등에 인치 표기 대신 ㎝를 표기해야 한다.

일부 업체들은 ㎝로만 표기하면 너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판단, 인치 대신 '형' 표기를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가령 40인치 TV의 경우 '40인치' 대신 '40형'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인치는 이제 쓸 수 없지만 '형'은 도량형이 아니어서 규제에 걸릴 것도 없고, ㎝보다는 혼란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온 전자업계 카탈로그를 보면 18평형 에어컨의 경우 '18형 에어컨'이라고 표기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LG전자는 카탈로그에 인치, 평 대신 ㎝와 ㎡로 일단 규격을 표시해 놓고 주석을 달아 인치와 평으로 환산된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건설업계도 내달부터 입주자모집공고나 분양 안내서 등에 소비자들이 익숙한 평형 대신 ㎡를 써야 한다.

대림산업은 7-8월 중 분양예정인 오산 세마 e-편한세상의 모델하우스의 평형 표시판을 모두 철거했고, 분양 카탈로그에도 평형 대신 ㎡로만 표기하기로 했다.

GS건설 역시 7월 이후 분양 사업지의 홍보물을 ㎡만 사용한다는 원칙이며, 대우건설은 이와 관련해 조만간 사내 담당 부서 회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아무래도 시행 초기 평 단위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어 대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건설업체들은 소비자 혼선을 줄이기 위해 전자업계의 경우와 비슷하게 ㎡ 단위가 익숙해질 때까지 '34평형' 대신 '34형'이나 '34타입(TYPE)'을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로 표기하고 일일이 평으로 환산해 설명해주기보다는 차라리 '형' '타입' 등으로 안내하는 것이 훨씬 소비자들의 혼란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아파트 시세와 분양정보 등을 제공하는 부동산 정보업체들도 도량형 표기법 통일에 대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총 15개의 회원사가 소속된 부동산정보협회는 지난 2월부터 5개월째 표기 전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건교부의 건축물관리대장 정보를 받아 전용면적을 통일하고, 평형 표기법을 써왔던 공급면적은 ㎡로 환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며 "공급면적과 전용면적은 모두 ㎡로 표기하고, 혼란을 막기 위해 기존 평형은 하단에 부기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면적 표기법이 익숙지 않아 시행 초기에는 네티즌들이 원하는 아파트를 찾는데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과 직접 대하는 유통업계는 규격 표기는 정부 시책대로 하되, 판매직원들을 통해 익숙한 도량형으로 환산했을 때 규격을 알려주는 방법을 쓸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금은 공식적인 판매 단위는 g이지만 고객들에게는 돈쭝 단위로 얘기해주고 있고, 옷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허리 사이즈를 ㎝로 표시하지만 일부는 가격표에 인치로 표기하며 판매할 때는 인치 단위로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량형 표기를 변경해야 하는 제품들과는 달리 타이어의 경우 '인치' 단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대한타이어공업협회 송영기 이사는 "정부측과 새 도량형 표기에 타이어는 제외키로 합의했다"며 "현재 타이어 규격 표기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표기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이미 세계 표준 도량형을 따르고 있어 변동이 없다.

전 세계 항공사는 고도는 피트로 하고 속도는 노트를 쓰고 있으며 공산권의 경우 고도를 미터로 쓰기도 해서 객실 스크린에 피트와 미터를 동시에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는 또 탑승실적에 따라 무료항공권을 부여하거나 좌석승급을 해주는 마일리지 제도의 경우 '마일리지'라는 명칭 그대로 전 세계가 마일 단위로 고객에게 통보를 해주고 있어 역시 변경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