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대상 '뻥'광고, 악덕 상술 기승

2011-12-20     김솔미 기자

허위광고·과장된 할인율 등으로 소비자들을 현혹시켜 계약을 체결하는 사업자들의 부당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는 사업자가 계약 시 중요사항을 고의 누락하거나 계약 체결 후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등의 악덕상술을 일삼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특히 이 같은 부당행위는 공신력이 낮은 업체들이 노인, 가정주부 등 서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존 법제로는 규율되지 않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

이같은 부당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사업자 부당행위의 유형과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사업자 부당행위 지정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한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계약 체결 이전='뻥'광고로 소비자 유인


20일 포항시 남구 지곡동에 사는 김 모(남.46세)씨에 따르면 그는 최근 A정보통신이라는 업체로부터 내비게이션을 무료로 설치해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 새 제품을 구입할 계획이었던 김 씨는 반가운 마음에 업체 측의 설명을 계속 듣게 됐다고.

김 씨에 따르면 상담원의 제안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설치비 명목으로 360만원만 지불하면 2년 무상 AS는 물론, 3년 동안 직계가족의 통신요금을 매달 10만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는 것.

당장 거액을 입금해야한다는 말에 망설이던 김 씨는 카드론 대출을 받을 경우 9.5%의 추가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상담원의 말에 결국 계약을 결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달, 통신요금 청구서를 확인해본 김 씨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업체 측이 약속한 할인혜택이 지켜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

김 씨는 “계약서에는 AS기간, 설치비 등 대략적인 설명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약조건은 명시돼 있지 않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업체 측의 입장 확인을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체결 단계=소비자 권리 제한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사는 하 모(남.39세)씨는 지난 4일 티켓 전문업체에서 뮤지컬 ‘피노키오’ 관람 티켓을 이틀 후인 6일 오후 3시로 예매했다.

당일 오후 7시께 개인사정으로 관람이 불가능해진 하 씨는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으나 예매 취소에 실패했다.

그는 “공연까지 이틀이 남아있었는데도 환불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가족 나들이를 가려고 들떴다가 이번일로 기분만 망치게 됐다”고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티켓 환불의 경우 공연일 7일 전은 10% 공제 후 환급, 3일 전은 20% 공제, 1일 전은 30%공제 후 환급을 받을 수 있으며 당일 예매 취소의 경우는 공연일 3일 전까지 전액 환급이 가능하다.

이 기준대로라면 하 씨는 공연 이틀 전 예매 취소를 의뢰했기 때문에 30%를 공제한 차액에 대해 환급 받을 수 있다.

▲ 홈페이지에 기재된 취소 약관


하지만 업체 약관은 휴일이 포함된 경우 2일전 오후 5시까지를 마감시한으로 규정하고 있어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과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은 “업계의 약관이 소비자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고 규정을 미리 명시했다면 업계 규정을 우선으로 보는 편”이라며 “상품 결제 전 업계의 환불 규정을 꼼꼼히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체결 이후=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조건 일방적으로 변경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 사는 최 모(남.40세)씨는 지난 10월 강남역 지하에 있는 통신사  판매점에서 피처폰을 개통했다.

평소 통화량이 적은 그는 개통 당시 기본요금 1만5천원 수준의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또 직원으로부터 단말기 할부금을 포함해 월 2만3천원 정도의 요금이 청구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게 최 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최 씨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요금은 무려 7만1천800원. 당황한 최 씨는 요금 청구내역을 확인한 뒤에야 자신이 매월 5만5천원씩 지불해야 하는 스마트폰요금제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요금제 부분이 볼펜으로 지워져 ‘오즈스마트55’ 요금제로 뒤바뀐 계약 서류



그는 “판매점을 통해 가입 당시 서류를 받아 확인해 보니 기존에 가입했던 요금제를 볼펜으로 지운 흔적과 그 옆에 ‘오즈 스마트55(LG유플러스의 5만5천원 요금제)’라고 기재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더 비싼 요금제에 가입시키기 위해 소비자를 속인 게 분명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판매처에서 직원이 임의로 소비자의 요청과 다른 요금제에 가입시킨 것으로 확인됐다”며 “불편을 겪은 소비자에게는 사과했으며, 요금제 변경까지 마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 공정위, 제정안 행정예고...규제 어려운 '사각지대' 여전  

공정위는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사업자 부당행위의 유형과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사업자 부당행위 지정고시 제정안’을 마련해 행정예고한다고 13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계약체결 시 중요사항을 소비자가 오인하게 하는 행위, 판매의도를 숨기고 거래를 권유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이 비해 현저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 등은 사업자 부당행위에 포함된다.

또 계약체결 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조건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채무 이행을 중지하는 행위, 소비자와의 분쟁 중에 채무이행을 독촉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한 사업자에게는 최고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이번 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소비자피해 억제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공정위가 정의한 사업자 부당행위의 경우 주로 공신력이 낮은 업체들이 기존 법망을 피해 교묘하게 일삼고 있어 방문판매법,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등 기존 법제로는 규율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결국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업자들의 부당행위를 가려낼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

공정위 소비자정책국 관계자는 “행정예고 기간 중에 제출된 의견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 반영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고시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