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의 소비자경제> 소비자 보호법과 현실 아직은…
2007-07-23 이종인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
법명에서 '보호'의 명칭이 사라진 것은, 시장에서 소비자는 생산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맞는 말이다. 요즘 전통적 시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시장에서도 소비자의 권익이 상당히 신장되었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업자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웬만한 기업들은 소비자불만에 대응하는 전담 부서를 두고 있으며, 정부에서 권유하는 가이드라인을 훨씬 넘어서는 사전, 사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전에 '소비자는 왕'이라는 생색내기 위한 용어가 바야흐로 현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여전히 소비자의 불만을 외면하거나 제품을 팔고나면 그만이라는 사고, 그 결과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 간 거래를 포함해서 수많은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인터넷 거래나, 중소규모의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비자피해는 아직 거래질서가 충분히 정착되지 않거나, 제도적 결점 때문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규모사업자들이 주도하는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시장에서도 소비자의 불만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얼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소니 제품에 대한 불만을 해당 회사에 제시한 적이 있다. 제품의 품질보증기간(1년)을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제품이 멈춰버린 것이다.
해당 회사에서는 보증기간이 지난 제품은 자기들이 정한 금액의 '유상수리' 이외의 다른 소비자 불만처리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해당회사의 서비스 책임자에게 보냈으나 묵묵부답이다. 과연 소비자의 권익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는 독자들께서 판단해보시기 바란다.
<저는 귀사의 바○○ 노트북 ○○모델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입니다. 사용 첫 주부터 갑자기 화면이 하얗거나 핑크빛으로 반전되어 정지되는 현상, 깜박이며 정지되는 불량이 나타나, 제가 일하는 곳의 수리서비스담당 직원에게 수차례 문의와 개선조치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동 랩탑이 보조용으로 주로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작업파일 손상이 없어서 수리요청하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한 달에 2~3번 그런 현상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 '하드디스크 unknown error'와 같은 메시지와 함께 작동 불능상태가 되었습니다.
귀사의 수리담당직원은 전화통화에서는 저의 물음에, "이용자과실을 확인할 수 없으며, 원인을 잘 모르겠지만, 시피유(CPU)에 관련된 문제가 있으며, 외부충격이나 과열된 전원, 먼지 등에 따른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답변과, Unknown error in hard disk 라고 나타났는데, 왜 CPU에 문제가 있는지 물음에 대해서는 “노트북 기계 자체의 알 수 없는 에러메시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비록 몇 개월 전에 보증기간이 지났지만, 귀사에서 CPU탓일 것이라는 말과, 32만원의 CPU 교환비용을 내야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비록 보증기간이 지났지만,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제품상 근본적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회사는 책임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상이 필자가 소니사에 보낸 불만내용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독자들의 판단은 어떠할까 궁금해진다. 품질보증(warrant)은 부분적으로 소비자보호의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제품의 판매수단의 하나로 활용되어 온 수단의 하나이다. 이것만으로 소비자서비스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겪은 경험, 당초부터 있던 문제들을 보증 기간 내 해결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 과실지만, 만일 필자가 경험하여 판단한 것과 같이 제품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면, 그래서 소비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피해를 보아야만 한다면 과연 소비자의 지위가 사업자와 동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문제의 원인이 소비자의 과실에 조금이라도 있었다는 것을 사업자가 보여주는 노력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적당한 대체 노트북을 사기 위해 들른 가게에서 하는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대기업이라고 다 서비스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팔고나면 그만인 경우도 많지요. 우리나라 노트북 브랜드 가격에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사후서비스가 너무 좋아 고객들이 좋아해요.”
<이종인(李種仁)박사 약력>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경제학박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로스쿨 박사후연구원,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국회 경쟁력강화특위 파견연구원
-OECD 소비자정책위(CCP) 한국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