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없는 금융지주사, 정권말 긴장고조
금융지주사 회장 1인자 중심의 권력구도로 신한사태 재현 우려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각각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했지만 실상 1인자(회장) 중심의 권력구도가 지속되면서 '2인자'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회장 중심의 1인 지배구조가 계속될 경우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신한사태'와 같은 불안한 후계구도 문제가 재현될 수 있는 만큼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이사회 권한을 강화해 '확실한 2인자'를 키울 수 있는 풍토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금융지주사 가운데 사장 등의 '2인자'가 있는 곳은 KB금융지주(회장 어윤대)가 유일하다.
KB금융은 어윤대 회장 아래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임영록 사장과 자행출신인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있다.
어 회장은 지난 2010년 7월 KB금융지주 수장에 오른 후 임 사장과 민 행장을 선임했지만 타지주사와 마찬가지로 회장 중심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하며 확실한 1인 체제를 구축했다.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고 있는 이 회장은 사장은 없이 5명의 전무와 자행 출신인 이순우 우리은행장을 두고 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산업은행장을 겸직하며 그룹 내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윤만호 부사장과 김영기 수석부행장 등이 강 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신한금융 경영진간 내분사태'를 계기로 전 경영진이 한꺼번에 물러난 후 지금의 한동우 회장 체제가 들어섰다.
한 회장은 같은 신한생명 사장 출신인 서진원 신한은행장과 함께 '투톱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내부출신이 후계를 잇도록 하는 'CEO(최고경영자) 승계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김종열 사장이 돌연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김승유 회장의 향후 거취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권 내 최장수 CEO(16년)인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할 경우 연임할 가능성이 높지만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수모를 겪을 수 있다.
특히, 김 회장을 도와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공시켰고 외환은행 인수를 주도했던 ‘2인자’ 김종열 사장의 사퇴로 인해 하나금융 후계구도에 불안감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포스트 김승유' 후보군으로 김정태 하나은행장과 윤용로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이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보다 오히려 부행장급 인사중에서 대를 이을 '제3의 후보'가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회장 1인에게 이렇듯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것은 금융지주사의 불안한 지배구조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금융지주사는 오너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주인없는 기업'이거나 최고경영자(CEO)가 가진 자사 지분이 소규모에 불과해 확고한 지배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지주사 CEO가 교체되거나 심각한 외풍에 시달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산은금융지주를 제외한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 연봉은 10억원을 웃도는 노른자위 자리로 정권이 바뀔때마다 가장 눈독을 많이 타는 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승계를 하려면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을 일찍부터 낙점해서 키워주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신한금융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후계 준비 없이 회장 등의 경영진이 갑자기 나갈 경우 리더십의 공백으로 회사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주주들이 뽑은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이사회를 장악해 CEO를 뽑아야 하는데 이사회가 그 역할을 못하면서 회장의 힘이 점점 커졌고 정부가 견제를 빌미로 개입하면서 금융지주사들의 경영구도가 굉장히 불안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장은 그러면서 "이사회가 승계문제에 대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제대로된 승계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법률안의 주요 골자는 CEO승계와 임원선임 등에 대한 지배구조 내부규범 마련 의무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사외이사의 독립성 및 전문성 강화 등이다.
하지만 김 소장은 "금융당국이 낸 지배구조법에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며 "정부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안에 경영권 승계가 이사회의 중요한 권한이라는 점을 포함시켜야 하고 승계에 관한 적정한 공시를 통해 이사회가 오너십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