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4>... '낑'기대하고 들른 공단선 '오리털파카' 선물

빳빳한 '만원' 다발 일사천리로 분배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간사는 바빠졌다. 공보실장이 힘을 써주지만, 그것은 '보조역할'이다. 공보실장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기자는 '발로 뛰는' 직업이라고 했다. 손이 아닌 '발로 쓰는 기사'가 무섭다고 했다. 기사 쓰듯 열심히 발로 뛰었다.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뛰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열심히 뛰었다. 대기업을 접촉하고, 금융기관을 만났다.

    김봉투 기자도 거들었다. 하지만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간사와 함께 금융기관을 찾아가서 '들러리'를 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금융기관에서는 은행장을 만날 필요도 없다. 임원부속실장이 기자를 상대하는 업무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부속실장에게 얘기를 해놓으면, 은행장에게 보고해서 필요한 조치를 해줄 것이다. 임원부속실장은 '민원' 담당이었다.

    출장 전날, 간사는 가장 바빴다. 각 은행의 임원부속실장들이 번갈아 가며 한국은행 기자실에 들렀기 때문이다. 간사는 이들과 일일이 커피를 한 잔씩 마셔야 했다. 점심시간에 온 임원부속실장과는 식사도 함께 했다. 임원부속실장들은 헤어지면서 준비해온 '소정의 출장비'를 간사에게 넘겨줬다.

    이튿날. 기자들은 준비된 금융기관 버스에 올랐다. 기자들을 보살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는 한국은행 공보실장도 동행했다. 공보실장은 부산에 도착하면 할 일이 많았다. 기자들에게 '숙'과 '식' 등을 차질 없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간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낑'을 기자들 머릿수로 분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번 해본 솜씨였다.

    금융기관이라서 그런지 '낑'은 빳빳한 만 원짜리였다. 그것도 백만 원 묶음이었다.

    분배 방식이 희한했다. 돈을 한 장씩 일일이 셀 필요가 없었다. 백만 원 묶음을 풀어서 지폐에 찍혀 있는 일련번호를 보면서 나눠주면 간단했다. 예를 들면, 지폐에 찍혀 있는 일련번호의 끝자리를 보면서 20, 40, 60, 80… 하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분배를 끝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숙달된 분배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낑'의 규모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밝힐 수가 없다. 부산에 도착하면 추가 '수입'이 있을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러면 '1차 분배' 때보다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다.

    주머니가 두둑해졌으니 무료한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친선 고스톱'이다. 어느 사이에 버스 안에는 고스톱판 두 군데가 형성되었다. '출장비'의 일부를 풀어서 '점 천 짜리' 친선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버스는 계속 달렸다. 경상북도로 접어들어 '구미공단'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스톱을 치던 간사가 별안간 구미공단으로 들어가자고 요구했다. 모두들 의아했지만 간사의 말을 따랐다. 주머니가 두둑해질 정도로 '낑'을 나눠준 고마운 간사의 요구가 아닌가.

    코스를 바꾼 버스는 구미공단 안에 있는 대기업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대기업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당황했다. 기자 10여 명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으로 가던 길에 잠깐 찾아왔다고 밝힌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행 출입기자단과 대기업의 구미공장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대기업은 예의를 갖췄다. 날씨가 쌀쌀하니 공장 '견학'은 생략하고, 홍보영화를 보는 것이 어떤가 제안했다. 홍보영화를 보면서 간사는 한 가지만을 기다렸다. 대기업이 부랴부랴 무엇인가를 마련해서 주지나 않을까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대기업은 기자들의 머릿수만큼 '오리털 점퍼'를 선물로 마련했을 뿐이다. 간사는 버스 뒷좌석에 쌓아놓은 점퍼를 보며 투덜거렸다.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고, 쓸데없는 짐까지 생겼다고 투덜거린 것이다. 덕분에 부산 도착시간은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