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10 > 현대와 '억지 출장' 실랑이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언젠가 김봉투 기자는 바람을 좀 쐬고 싶어졌다. 기자실 동료 기자들과 '작당' 끝에 울산을 '취재'하기로 했다. 현대 그룹이 울산 전체 면적의 10%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으니, 취재대상은 당연히 현대 그룹이었다.
현대 그룹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안면'이 있어서 만만하다는 점이 감안되었다. 기자생활을 제법 하다보면 이곳저곳에 '안면'을 쌓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국내 굴지의 그룹이니까 대접도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그러니 '1박 2일' 정도쯤 신세를 져도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봉투 기자는 간사, 동료 기자와 함께 무턱대고 현대 그룹을 찾아갔다. 홍보실 관계자를 만났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울산 취재 좀 하자"고 밀어붙였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이다. 노골적인 '슈킹'이었다.
당시 현대 그룹에는 이렇다할 이슈가 없을 때였다. 기자가 울산까지 취재하러 갈 명분이 없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더군다나 현대 그룹을 출입하는 기자들도 아니었다. 소위 '나와바리'가 아니었다. 공식 출입기자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도 울산에 가서 취재 좀 하자고 우긴 것이다. 속 보이는 취재 요구였다. 따라서 홍보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요구였다.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기는 쪽은 기자였다. 언제나 그랬다. 제아무리 현대 그룹이라고 해도 '무관의 제왕'에게는 슬그머니 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인 기자들과의 '안면'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취재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① 김봉투 기자 일행은 울산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취재한다.
② '나와바리'가 아니므로 현대 그룹은 '낑'을 한푼도 내놓지 않는다.
③ 또한 교통편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④ 단지 기자들에게 숙식만 제공하면 된다.
⑤ 물론 숙식 가운데 '식'에는 음주가 포함된다.
대충 이렇게 '취재'를 하기로 합의했다. 쉽게 말하면, 재워주고 술이나 한잔 먹여주는 조건이었다. 그랬으니 이를테면 '구걸 출장'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구걸 출장' 치고는 호화판 출장이었다. 경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니까.
그렇다고 출장비도 없이 출장을 갈 기자들이 아니었다. '낑'은 다른 곳에서 조달했다. 교통편도 다른 곳에서 '협조'받았다. 그러니 '억지 출장'이기도 했다.
이렇게 억지 출장을 떠난 김봉투 기자 일행은 울산에 도착했다. 어느 곳에서나 그랬듯 우선 숙소부터 배정 받았다. 그 과정에서 약간 실망들을 하고 말았다. 현대 그룹의 위상(?)과는 걸맞지 않은 대접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제공된 숙소는 '특급 호텔'이 아니었다. 현대 그룹이 손님 대접을 할 때 자주 이용한다는 호텔이었다. 뛰어나지는 못한 축에 드는 호텔이었다. 그나마 '2인 1실'이었다. 기대 밖이었다. 그렇다고 일정을 포기하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출입기자가 아닌데도 그만한 대접이라면 오히려 과분한 것이었다.
동료 기자가 툴툴거렸다. 그러면서 엉뚱한 제안을 했다.
"만약에 한잔 먹고 나서 누군가가 파트너라도 데리고 온다면, '2인 1실'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람은 방을 비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좀 불편하더라도, 파트너 없는 기자는 눈치껏 방을 양보해주기로 하자."
저녁식사 역시 현대 그룹이 가끔 이용한다는 단골 방석집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대단한 손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기대에는 못 미쳤을 뿐 '수준급'이었다. 어쨌거나, 공짜 술이었고 공짜 대접이었다.
그 날 밤 김봉투 기자는 동료 기자에게 방을 양보해줘야 했다. 동료 기자가 파트너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방은 남아돌았다. 한곳에 모여서 고스톱을 치는 것은 울산 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튿날 동료 기자가 파트너와의 '무용담'을 털어놨다.
"몸값을 '왕창' 주겠다고 했더니 숙소에서 기다리라고 하더군. 현대 그룹이 호텔을 통제하는 일이 가끔 있으니까 옷을 갈아입고 몰래 들어오겠다는 거야. 잠깐 기다렸더니 정말로 몰래 들어오더군.…"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공돈 쓴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소득재분배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글쎄. '낑'도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소득'이라면 세금을 내야 할 텐데, 희한한 논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낑'을 받고 나서 그에 따른 세금을 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