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17> 해외출장 품의…출장비 '0'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사진의 배경은 모두 '외국'이었다. 선배 기자는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그러니 사진은 바다를 건너가서 외국 구경을 하고 왔다는 '증명사진'이었다.
외국이란 곳을 구경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운 좋게 '해외출장'을 가면 '증명사진' 찍는 게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선배 기자는 그 좋다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사진부터 찾아온 것이다.
선배 기자는 김봉투 기자에게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서양 여자'와 나란히 붙어 앉아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있었다. 선배 기자는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초'까지 쳤다.
'초'는 은어다. 기자들 사회에서는 기사를 과장되게 쓰는 것을 '초를 친다'고 표현한다. 선배 기자는 과장된 기사를 쓰듯,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만나서 무슨 짓을 했던 여자라며 한참동안 '초'를 쳤다. "자네도 곧 밖에 나갈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김봉투 기자는 그런 선배가 무척 부러웠다.
그랬던 김봉투 기자에게도 마침내 '해외출장'의 기회가 생겼다. '출입처'에서 '출입 기자'들의 '해외취재'를 추진한 것이다. 물론 출입 기자들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해외취재를 보내주기로 한 것이지, 자발적으로 보내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출입처'에서는 김봉투 기자에게도 '해외취재 협조의 건'이라는 공문을 건네줬다. "귀 신문사의 김봉투 기자를 x월 x일부터 x월 x일까지 유럽 현지 취재에 동행하고자 하오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김봉투 기자는 신문사 데스크에 달려가 보고했다. '출입처'에서 건네 받은 초청장을 데스크에게 디밀었다.
데스크가 물었다.
"처음 나가는 건가?"
"예, 해외출장은 처음입니다."
데스크가 또 말했다.
"코스가 제법 좋은데…. 어디 보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빨리 품의서 작성해."
'해외출장 품의서'는 대단히 쓰기가 어려웠다. 기사를 쓰는 게 직업이라 글 쓰는 것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품의서'를 쓰다보니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 아닌 '출장 경비' 부분이었다. 김봉투 기자는 '출장 경비'를 얼마라고 기입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다가 결국 데스크에게 물었다.
"출장 경비를 얼마라고 써야합니까."
데스크는 답답하다는 듯 김봉투 기자에게 말했다.
"품의서 이리 가져와."
품의서를 넘겨받은 데스크는 '출장 경비 난'에 "없을 무(無)"를 기입해 넣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출장 준비나 잘해."
김봉투 기자는 얼떨떨했다. 해외출장은 아무래도 국내출장과는 다를 것 같았다. 그동안 이곳저곳 출장을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국내출장은 수틀리면 버스를 타고 가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해외출장은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 먼 곳을 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신문사에서 적어도 '비행기표 값'은 지급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신문사는 돈 한푼 대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출장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도 선심이라도 쓰듯 말이다.
김봉투 기자는 당황했다. 귀밑까지 찢어졌던 입이 다물어졌다. 데스크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 출장 경비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데스크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이봐, 기자가 왜 그렇게 답답해. 출입처에서 알아서 해줄 거야."
과연 그럴까 했다. 그랬더니 과연 그랬다. 출장비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출입처'에서 김봉투 기자에게 출장비를 지급한 것이다. '출입처'의 부장급 직원에 해당하는 여비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급했다. '몇 박 몇 일'이라는 날짜계산까지 정확했다. 비행기표는 함께 가는 기자들 것까지 일괄 예매해준다고 했다. 그러니 김봉투 기자는 자기 돈을 한푼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출입처에서 받은 출장비는 십여 일이나 유럽을 구경할 경비라서 그런지 상당히 두툼했다. 더구나 말단직원이 아닌, '출입처'의 부장급 직원에 해당하는 여비였으니 '올챙이 기자'를 갓 넘긴 김봉투 기자에게는 간단치 않은 금액이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한 데스크는 과연 달랐다. 데스크의 말처럼 김봉투 기자는 답답한 기자였다. 제 아무리 해외출장이라고 해도 여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