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촌지실록'<25>'뺑덕어미'가 심봉사 돈쓰듯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심청전이 이렇게 끝나면 맥이 빠진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뺑덕어미'가 등장한다. 뺑덕어미는 심봉사의 첩으로 들어오더니 살림을 결단낸다. 그 씀씀이가 보통을 넘는다. 대단하다.
"쌀을 주고 엿 사먹기, 벼를 주고 고기 사기, 잡곡으로 돈을 사서 술집에서 술 먹기, 이웃집에 밥 부치기, 빈 담뱃대 손에 들고 보는 대로 담배 청하기, 이웃집에 욕 잘하고 동무들과 싸움 잘하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술 취하면 한밤중 긴 목놓고 울음 울고, 동리 남자 유인하기, 일년 삼백 육십 일을 입 잠시 안 놀리고는 못 견디어 집안의 살림살이를 홍시감 빨 듯 홀짝 없이하고 유월 가마귀 곤 수박 파먹듯 불쌍한 심봉사의 재물을 주야로 퍽퍽 파던 터라.…"
그것뿐 아니다. 뺑덕어미는 입덧을 한다며 살구값으로 300냥, 떡값과 팥죽값으로 100냥을 더 '녹인다'. 입덧을 한다지만 임신한 증거는 안 보인다.
그것으로도 그치지 않는다. 심봉사의 재산으로는 모자랐던지 빚까지 진다. 해장술값 40냥, 엿값 30냥, 담뱃값 50냥, 머리에 바르는 기름값 20냥 등등이다. 모두 심봉사가 갚아줘야 할 빚이다.
뺑덕어미는 남의 돈을 이렇게 펑펑 써댔다. 재미가 대단했을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헤프게 쓸 수 있었을까.
김봉투 기자 일행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돈을 제법 잃었다. 모두들 '신나게' 잃었다. 지갑들이 얇아졌다. 그런데도 김봉투 기자 일행은 희희낙락이었다. 돈 잃었다고 풀이 죽은 기자는 없었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 돈을 읽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들은 돈을 잃고도 좋아하는 '희한한 인종'이었다. 뺑덕어미와 닮은 '인종'이었다. 하기는 조금 얇아진 지갑 따위는 곧 두툼하게 채워질 것이었다. 그런 것을 믿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자들만 그랬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끗발 높은 어떤 '저명인사'의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한국에서 날아온 기자단에게 한끼를 대접하겠다는 '정중한' 초대였다. 공짜 음식을 거절할 기자들이 아니었다. 좋다고 달려갔다.
장소는 한국식당이었다. 그것도 '고급' 한국식당이었다. 소갈비가 나오고, 등심이 나오고, 생선조림이 나오고, 파전이 나오고, 김치와 깍두기도 나왔다. '값비싼' 소주까지 나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음식이었다. 진수성찬이었다. 김치, 깍두기, 소주가 가장 반가웠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허겁지겁 먹었다. 소주는 허겁지겁 마셨다. 먹을 만큼 먹고, 과일과 커피까지 해치웠다.
계산할 차례가 되었다. '저명인사'는 점잖게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계산서를 가지고 온 사람은 '한국 아줌마'였다.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 아줌마'였다.
'저명인사'는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지갑을 꺼냈다. 여러 장이 들어 있는 신용카드 가운데 한 장을 끄집어냈다. VIP 카드라도 되는지 가급적이면 기자들이 신용카드를 볼 수 있도록 '완만하고 느린 동작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한국 아줌마'에게 볼펜을 요청했다.
'저명인사'는 볼펜을 들더니 계산서에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 물론 영어였다. '저명인사'가 미국까지 와서 한글을 쓸 까닭은 없었다. 그 동작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익숙해 보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와 함께 넘겨줬다.
마침 '저명인사'의 옆에 앉았던 김봉투 기자가 그 계산서를 슬쩍 넘겨다보았다. '플러스 서비스 차지(Plus Service Charge) 몇 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김봉투 기자는 둔감한 기자였다. '서비스 차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머리에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기자답지 못했다. '한국 아줌마'의 태도를 보고 나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국 아줌마'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저명인사'에게 절을 했다. 허리가 정도 이상으로 굽혀진 절이었다. 방석이 깔려 있었다면 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서비스 차지'는 다름 아닌 '팁'이었다. '저명인사'는 음식값은 물론, '팁'까지 신용카드로 계산한 것이다. 그 '팁'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한국 아줌마'가 허리를 깊숙하게 굽힐 정도로 많은 '팁'이었다.
'저명인사'는 '폼'을 있는 대로 잡으며 '팁'을 푸짐하게 주었고, '한국 아줌마'는 고마워서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던 것이다.
당시는 경상수지가 만성적인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기자들은 한푼의 외화라도 절약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기사들을 보도하던 때였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적지 않은 외화를 '신나게' 잃었다. '저명인사'는 기자들에게 진수성찬을 내더니, 만만치 않은 '팁'까지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기자들도 외화를 펑펑 쓰고, '저명인사'도 펑펑 쓴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쓸 용기가 없을 돈이었다. 그런 돈을 기자도, '저명인사'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쓰고 말았다. 기자도, '저명인사'도 '뺑덕어미와 닮은 인종'이었다.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데 한몫을 한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