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 '촌지실록'<26>- 촌티 나는 서민기자 '과분했던' 하룻밤

침실 6개 짜리 '초초특급' 호텔 룸 소파에서 새우잠(?)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김봉투 기자가 미국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한 저녁 때였다. 외무부 관리가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입국절차는 일사천리였다. 외무부 관리가 '알아서' 끝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 관리까지 마중 나왔으니 그야말로 '칙사대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봉투 기자는 '대한민국의 장관'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수행기자'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현안 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장관과 함께 날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김봉투 기자는 이번만큼은 단순히 '낑'이나 쓰며 놀자고 온 것이 아니었다. '정부 돈'을 쓰는 당당한 수행기자였다. 정부 돈이라면, 당연히 예산이다. 그랬으니 김봉투 기자는 이번에는 '반(半) 공무원'이 된 셈이다.

김봉투 기자는 동료 기자 한 명과 함께였다. 장관 일행은 '대부대'인 반면, 기자는 김봉투 기자를 포함해서 단 두 명뿐이었다. '조촐한 기자단'이었다.

장관을 수행 취재하니 좌석부터가 달랐다. 널찍한 좌석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느긋하게 날아갈 수 있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여승무원들이 찾아와서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이 없는가 묻기도 했다. 없다고 대답했는데도 한참 뒤에 다시 와서 또 물었다. 비행기 조종하느라고 바쁠 기장도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장관에게 인사했으면 그만일 텐데 기자에게까지 인사를 한 것이다.

기내식도 '성찬'이었다. 술을 한 잔 달라고 하면, 아예 병째로 주겠다고 했다. 서비스부터가 달랐다.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출국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미국에 도착해서도 '칙사대접'이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은 외무부 관리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대기업'에 있는 사람이었다. 기자들에게도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전직 공무원'이던 사람이었다. '로비스트'라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로비스트'는 장관에게 가장 공손한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도 장관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사조차 받지 않고 휙 지나쳐버렸다. 그래도 '로비스트'는 공손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장관 뒤를 졸졸 따라갔다.

저녁 때 도착했으니 배부터 채워야 했다. 일행은 대기했던 차를 타고 '한국식당'으로 직행했다. 한국식당의 사장은 여자였다. 여사장은 입을 귀밑까지 찢으며 장관을 맞았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안내했다. 틀림없이 장관과는 구면이었다. 어쩌면 장관이 뉴욕 출장 때마다 찾는 단골이었다.

일행은 불고기와 냉면, 소주로 저녁을 먹고 마셨다. 자리 한 귀퉁이에는 공항에서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던 '로비스트'도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장관은 '로비스트'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반기지도 않는데 넉살좋게 따라왔던 것이다.

장관이 아는 척 하지 않으니까 밑의 관리들 역시 그랬다. '전직 공무원에 대한 예우'라고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비스트'는 '찬밥신세'였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앉아서 버텼다. 모두들 한 잔씩 하는 소주조차 입에 대지 않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로비스트'는 마치 숨을 죽이고 있는 게 자기가 할 일인 것처럼 보였다.

식사를 마치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일행은 호텔로 굴러갔다. 예약이 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봉투 기자는 장관 비서관이 건네주는 '객실 열쇠'를 받아들고 동료 기자와 함께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객실'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축구장'이었다. 아마도 한 층 전체였다. 웬만한 사무실만큼 넓은 침실이 자그마치 6개나 있었다. 응접실까지 합치면 7개였다. 목욕실 숫자도 헤아려봤다. 역시 7개였다.

'특급'이나 '초특급' 정도가 아니라, '초초특급'이었다. 온 가족에 친척까지 몰려와서 묵는다고 해도 넉넉하고도 남을 만한 호텔이었다. 이 엄청난 '객실'을 기자 두 명이 밤새도록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룻밤 숙박비가 얼마나 되는지는 물론 알 필요도 없었다. 장관을 수행했으니 모두 '정부 예산'으로 지불될 것이었다. 장관이 묵을 객실과, 장관을 수행하는 관리들의 객실까지 감안하면, 하룻밤 '잠값'만 해도 간단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기자에게까지 이 정도 '초초특급' 객실을 쓰도록 했으니 어쩌면 호텔을 통째로 '전세'라도 냈을지 모를 일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의 장관'은 통이 컸다. 아니면, '대한민국'의 통이 그렇게 컸다.

김봉투 기자는 주눅이 들었다. 동료 기자와 응접실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응접실마저 넓었다. TV를 틀었지만 알아듣지 못할 방송뿐이었다.

응접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침실은 전깃불이 닿지 않아 캄캄했다. 슬그머니 무서운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 기분을 떨쳐보려고 '양주'를 뒤져서 찾아내 몇 잔 홀짝거린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아침이었다. 소파에서 쪼그린 자세로 잠이 들어 있었다. 담요로 배조차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 넓은 침실에는 아예 누워보지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촌티 나는 서민 기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하룻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