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27>-'장관 따로, 기자 따로'

아이스크림 쳐들고 '자유의 여신'처럼… 증명사진으로 기록 남겨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어울리지 않는 '초초특급 호텔'에서, 더욱 어울리지 않게 쪼그리고 하룻밤을 보낸 김봉투 기자와 동료 기자는 이튿날 장관 비서관과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뉴욕 시내 구경에 나설 참이었다.

안내해줄 사람은 당연히 확보되어 있었다. 자기 돈 들여서 구경하라고 하면 아예 포기할 기자들이었다. 서툰 영어를 떠듬거리며 자기들끼리 구경다닐 용기가 없기도 했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무관의 제왕'이다.

김봉투 기자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장관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가 비서관에게 물었다.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해본 질문이었다. 장관을 수행하고 왔기 때문에 별다른 뜻도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더구나 특별히 할 말도 없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비서관은 대답을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면서 장관이 손님을 만나러 아침 일찍 외출했다고 했다. 김봉투 기자는 전날 밤 눈총을 받으면서도 장관을 졸졸 따라다녔던 '로비스트'의 얼굴을 잠깐 떠올렸다. 혹시 장관이 그 '로비스트'를 만나러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장관의 '공식적인 일정'은 워싱턴에서 시작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침 일찍 손님을 만나러 나갔다는 것이 약간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다. '로비스트'는 장관 일행이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 밤늦게 돌아갔다고 했었다. 그러나 '찬밥'이 되면서도 끈질기게 버틴 것을 감안하면, '로비스트'는 그렇게 간단히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질기게 물고늘어질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질문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로비스트'에 대한 생각은 잠깐이었다. 김봉투 기자에게도 나름대로 빡빡한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봉투 기자는 동료 기자와 함께 뉴욕 시내를 싸돌아다니며 구경해야 하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장관이 '로비스트'가 아닌, 보통 손님을 만나러 갔다면 아침 일찍 서둘렀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었다. 장관에게도 사생활이 있는 것 아닌가. 억지로 가십거리를 만들기 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미 현안'을 취재한다고, 그것도 장관을 따라왔으면서도 김봉투 기자가 생각하는 일은 오로지 관광뿐이었다. 장관 역시 아침 일찍부터 손님을 만나러 갔다고 했으니 '장관 따로, 기자 따로'였다.

김봉투 기자와 동료 기자는 맨 먼저 '자유의 여신상'부터 구경했다. 한 세기 전 '자유의 여신상'을 본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이렇게 기록했었다.

"자유의 거상은 미국 뉴욕 항구에 있는 한 작은 섬의 기이한 구경거리다. 높이가 151척을 넘고, 손톱 하나의 길이가 3척을 넘는다. 오른쪽 다리 속에 굴을 만들어 작은 방을 배치했는데, 12명을 수용할 수 있다. 50척 언덕 위에 축대를 쌓고 거상을 세웠다. 오른손에 전등을 들었는데 그 빛이 60리 밖의 바다까지 비춘다.…"

유길준은 이렇게 상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마다 기록하고 다녔다. 그래서 '서유견문'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김봉투 기자의 직업은 기자다. 취재를 하고, 쓰는 직업이다. 그렇지만 김봉투 기자는 직업의식을 외면한 기자다. 기록은커녕 놀고, 먹고, '슈킹'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기자다. 그러니까 정신나간 기자다.

정신나간 김봉투 기자에게 관찰이니, 기록이니 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 관심 밖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그동안 사진이나 영화를 통해 수없이 보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감탄할 만한 대상이 결코 될 수가 없었다.

그러니 할 일은 뻔했다. 아름다운(?) '여신'과 '증명사진'부터 찍는 것이다. 그것도 가급적 '여신'과 나란히 나올 수 있도록 찍어야 했다.

김봉투 기자는 아이스크림을 '여신'의 횃불처럼 번쩍 쳐들고 '증명사진'을 찍었다. '여신' 흉내를 낸 것이다. 사진이 잘 나오도록 입을 귀밑까지 찢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귀국한 뒤 사진을 찾아놓고 들여다보니 아이스크림을 쳐든 김봉투 기자의 뒤에 '여신'이 같은 '폼'을 잡으며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여신'과 '폼'이 똑같다며 또 한번 낄낄거렸을 뿐이다.

가는 곳마다 그랬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가고, '센트럴 파크'라는 공원을 구경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아파트 숲이 되었을 공원이라고 했다. 분위기가 사납다는 '할렘'은 걸어서 돌아다닐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자동차를 타고 한바퀴 둘러봤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빠뜨리지 않은 것은 '증명사진'이었다.

한 세기 전 유길준은 글로 기록했다. 반면 정신나간 김봉투 기자는 글을 포기했다. '증명사진'으로 기록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