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 '촌지실록'<32>- 젓가락으로 죽 먹는 일본인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호주가'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다. 술이 고팠다. 마침 누각 하나가 보였다. 누각에는 '술집'을 표시하는 깃대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박지원이 아니었다. 만사 제쳐놓고 호기 있게 들어갔다.

술집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벌떼, 모기떼처럼 요란하게 붕붕거리고' 있었다. 모두 몽골과, 회자(回子·위구르) 사람이었다. 관찰력이 뛰어난 박지원은 그들의 모양새를 자세히 살펴봤다.

몽골 사람이 머리에 쓴 것은 마치 조선의 쟁반 같았다. 챙이 따로 없고 그 위를 양털로 꾸며서 누렇게 물들이고 있었다. 갓을 쓴 사람도 있었는데 모양이 마치 전립과 비슷했다. …그들은 모두 누른 옷에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회자 사람도 관찰했다. 그들은 붉은 옷도 입었지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붉은 솜털로 고깔을 만들어 썼는데…마치 물 밖에서 돌돌 말린 연꽃 같았고 약을 갈 때 쓰는 쇠절구 같이 양쪽 끝이 뾰족한 게 경박스럽고 우스워 보였다.

그 술집에서는 술을 무게로 달아서 팔고 있었다. 박지원은 술 넉 냥(兩) 어치를 주문했다. 술집 주인이 술을 따뜻하게 데우려고 하자 큰소리로 외쳤다. "데울 필요 없다. 찬 것으로 빨리 가져와라."

술잔이 너무 작았다. 박지원은 담뱃대로 잔을 쓸어버렸다. 큰 술잔을 가져오라고 또 소리를 질렀다. 호기를 부린 것이다. 넉 냥 어치의 시원한 술을 큰잔에 한꺼번에 부었다. 단숨에 들이켰다. 아니나다를까. '오랑캐'들은 박지원에게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났다. 술 좋아하는 김봉투 기자가 일본 오사카에서 술을 퍼마셨다. 박지원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박지원은 '넉 냥'을 내고 마셨지만, 김봉투 기자는 '공짜'로 마셨다. 그것이 달랐다.

일본 사람들은 김봉투 기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김봉투 기자에게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 김봉투 기자는 일본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서 엎어졌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김봉투 기자에게 술을 대접했던 사람이 아침밥까지 사줘야 했다. 속을 풀자며 호텔 꼭대기에 있는 '죽집'으로 갔다. 간밤에 호기 있게 퍼마신 술 자랑을 하는데 조금 떨어져 있는 좌석에서 어떤 사람이 죽을 먹고 있었다. 김봉투 기자는 그 사람을 박지원처럼 자세하게 관찰했다.

그 방법이 희한했다. 죽 그릇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더니 젓가락을 빠르게 놀리면서 입 속으로 죽을 부지런히 '밀어 넣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젓가락으로 밀어 넣는 죽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숟가락으로 듬뿍 퍼서 먹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을 가지고, 젓가락을 여러 차례나 놀리면서 힘들게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먹는 셈이었다.

김봉투 기자의 눈에는 죽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죽 그릇을 들고 그대로 마셔버리면 마시는 것이 되지만, 젓가락으로 죽을 밀어 넣고 있었으니 먹는 것이 되기도 했다. 처음 보는 '헷갈리는 현상'이었다.

김봉투 기자는 일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젓가락만 사용하고, 국은 그릇을 들고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죽까지 숟가락 없이 젓가락으로만 먹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한마디했다. 한국에서 '무관의 제왕'은 일본에서도 '무관의 제왕'이다. 거칠 것 없었다. 더구나 한국말로 떠드니 일본 사람이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죽 처먹는 것까지 재수 없네."

김봉투 기자를 안내하던 사람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 밥 먹는 것을 재수 없다고 그러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우리를 재수 없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 밥 먹는 모양을 보면, 마치 개가 밥그릇에 주둥이를 처박고 핥아먹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합니다."

김봉투 기자는 장관을 수행했던 미국에서도 어김없이 '본때'를 보였다.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동료 기자와 악착같이 육개장과 설렁탕만 찾았다. 그리고는 음식냄새를 지우라는 껌조차 씹지 않았다.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일부러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까짓 미국 사람들이 '무관의 제왕'에게 감히 뭐라고 할 것인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향수냄새가 진동했다. 얼굴 노란 사람이 나타나서 풍기는 고약한 음식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뿌렸을 것이다. 김봉투 기자는 그래도 도도했다. '무관의 제왕' 티를 냈다.

"향수냄새 덕분에 미국 것들 노린내가 안 나서 다행이다."

김봉투 기자는 이처럼 '티'를 내고 다녔다. 해외출장을 갈 때면 카메라부터 사서 목에 걸쳤다. 출국하기 전에 미리 카메라의 모델번호를 적어 가지고 나가서 면세점부터 찾았다. 그러면 동료 기자들도 덩달아 똑같은 카메라를 한 대씩 사서 걸쳤다. 이른바 '뇌동매매'였다. 카메라 상점에서는 속으로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한국 기자들은 똑같은 카메라를 한 대씩 걸치고 다니면서 '증명사진'을 찍는다며 입도 귀밑까지 똑같이 찢었다. 가는 곳마다 그랬다. 술집에서는 마치 전세라도 낸 것처럼 떠들어댔다. 공항에서는 입국수속이 오래 걸린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외국에서도 '무관의 제왕'이었다. 그렇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무관의 제왕'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에서 마주친 '오랑캐'들을 관찰하며 '경박스럽고, 우습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오랑캐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았다. 몸가짐을 단속했다.

"내가 쓴 갓은 털벙거지같이 생긴 것이었다. 은으로 꾸미고 꼭대기에 공작의 깃을 꽂았으며 턱 밑으로 수정 끈을 늘여 묶었으니 저들 오랑캐 족속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겠는가."

박지원은 이처럼 오랑캐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도 생각했다. '무관의 제왕'은 그렇지 못했다. 안하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