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35> 꿈속에서도 기사 쓰는 기자
2007-07-31 정리=김영인 기자
김봉투 기자는 기사를 쓰는 꿈을 여러 번 꿨다. 꿈속에서 쓴 기사는 대단한 명문이었다. 구구절절이 아름다운 글이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 아름답던 문장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주로 '올챙이 시절'에 그런 꿈을 많이 꾸곤 했다.
김봉투 기자는 자기 혼자 그런 꿈을 꾸는지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기자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선배 기자도 '올챙이 시절'에 기사 쓰는 꿈을 자주 꾼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자는 꿈속에서도 기사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자는 기사를 쓰는 게 직업이다. 기사를 써야 먹고살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기자에게는 '기사 스트레스'가 많다. 밤이고 낮이고 기사에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면 꿈속에서도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기사가 경쟁 신문에서 터져 나오기라도 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기사를 '물먹었다'며 씩씩거리고, 만회하겠다며 싸돌아다닌다. 기자는 스트레스가 대단한 직업이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화가 지망생들이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질문하면 이렇게 충고해주었다고 한다. "일단 화필을 들고 시작해봐라."
김봉투 기자도 원고지부터 일단 펼쳐놓고 나서 기사를 궁리한 적이 많다. 물론 요즘에는 컴퓨터부터 틀어놓고 궁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렘브란트의 발꿈치도 따라갈 재간이 없었다. 천재 화가와 우둔한 기자의 차이다.
김봉투 기자는 그래서 원고지를 앞에 놓고 줄담배를 피운 기억이 적지 않다. 기사를 어떻게 쓰기 시작할까 궁리하는 것이다. 머리를 짜다 보면 건강 따위는 생각할 여유도 없다. 골치 아픈 기획기사라도 쓸 때는 담배 한 갑을 모두 태워 없애기도 했다.
그런데, 기사 못지 않게 기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또 있다. 민원이다. 기자에게는 해결해야 할 민원이 많다. 걸핏하면 민원 때문에 시달려야 한다. 기자가 아니라 어쩌면 '민원 해결사'다.
민원은 헤아릴 수도 없다. 신문사의 민원, 신문사 고위층의 민원, 편집국장의 민원, 데스크의 민원, 선배 기자의 민원, 동료 기자의 민원, 동기생의 민원, 후배 기자의 민원 등 온갖 민원이 꼬리를 물고 기자를 따라다닌다.
그뿐 아니다. 신문사 고위층의 가족과 친척, 친구, 편집국장의 가족과 친척, 친구, 선배 기자의 가족과 친척, 친구… 등등 민원이 그칠 새가 없다. 민원만 해결하며 쫓아다녀도 힘들 정도다.
기자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있지 못하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면 경쟁 신문 기자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혹시 기사를 '물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럴 때면 "무슨 취재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다녀" 하면서 경계를 한다. "아니야, 민원 때문에 바빠서 그래" 하는 대답을 들으면 일단 안심을 한다. '민원 잘하는 기자가 민완 기자'라는 우스개까지 있을 정도다.
기자에게 가장 겁나는(?) 민원은 신문사 운전기사의 민원이다. 해결해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해주지 않을 경우 신문사의 고위층은 물론, '하위층'에게까지 섭섭하다며 불평을 하고 다닌다. 신문사 취재차량을 급하게 이용해야 할 때에 '보이코트'를 당하는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운전기사들의 민원이다. 운전기사의 민원 역시 마찬가지다. 운전기사 개인 민원은 물론이고, 가족, 친척, 친구, 친구의 친구… 등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운전기사는 '반(半) 기자'라고 했다. 기자와 호흡을 같이하는 '절반 기자'라는 소리다. 운전기사는 경찰서 출입기자처럼 돌아가면서 야간근무도 한다. 기자와 밤새도록 취재현장에 함께 있어야 한다. 단지 기사만 쓰지 않을 뿐이지 기자와 다름없이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반 기자'다. 민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자 중에서도 가장 많은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아마도 경찰서 출입기자다. 음주운전에 걸렸다고 빼달라는 민원, 접촉사고가 났다고 민원, 과속 운전하다가 감시 카메라에 찍혔다고 민원, 술 마시다가 싸움질했다며 풀어달라고 민원이다.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민원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신문사 누구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등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의 민원을 해결해줘야 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민원 가운데에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끗발'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적지 않다. 기자가 슈퍼맨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원을 해결해주지 못하면, 야유가 오기도 한다. "너 같은 민완기자가 그까짓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는가"하는 비아냥거림이다.
더구나 민원을 해결하러 쫓아다니면서도 기사는 기사대로 써야 한다. 빠뜨리면 안 된다. 굵직한 기사를 놓치면 야단난다. 그 바람에 기자는 고달프다. 민원은 민원대로 해결하면서, 기사에도 신경을 늦추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신문기자는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통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