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맛집탐방] 한식을 '퓨전' 했더니 손님이 줄서네

2007-08-02     뉴스관리자
●금수레= 12시 무렵만 되면 이른바 넥타이 부대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온다. 구내식당이 있다면야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그렇지 않은 바에는 한 끼 해결을 위해 그들은 사전에 모의를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이 심각한 고민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짜증 아닌 짜증이 난다. 머리에 떠오르는 메뉴라야 뻔하므로 누가 앞장서면 뒤따라가서 대충 때우고 만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나오는 우리 한식을 식당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한정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고 있다. 커다란 교자상에 수십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차린 이 한정식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게 만드는 밥상. 여럿이 같이 앉아서 먹는 이 밥상은 사대부들이 먹던 밥상을 흉내 낸 것이다. 9첩 반상이 최고였던 사대부들의 밥상이 못 먹은 게 한이 되었던 민간에 전수되면서 육해공군이 총 망라된 한정식으로 변신시킨 백성들의 복수극.

‘금수레’(대표 유태욱)는 한식집이다. 둔촌사거리에서 하남으로 가다 오른쪽 r길가에 자리한 이 집은 한식을 코스 요리로 내놓는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런 한식이 아니다.

반상(飯床)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같은 재료라도 현대인의 입에 맞게 조리를 달리한 것이다. 퓨전 한식이다. 죽(깨죽)과 물김치로 시작되는 코스는 종류에 따라 11가지에서 18가지가 나오는데 구운 오리고기에 소스를 발라 나온 중화풍 오리훈제 요리가 돋보인다.


배를 갈라 구운 새우는 속을 마요네즈 샐러드로 채워 색다른 맛을 주고 밤을 쇠고기로 돌돌 말아 낸 쇠고기찹쌀구이는 입 안을 가득 채우면서 고기만 먹을 때의 씹히는 맛에 밤의 부드러움이 같이 어우러져 단맛이 난다.

연어를 얇게 저민 무로 묶어낸 연어말이쌈은 시원하고 심해어로 시장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다는 메로구이는 민어를 먹는 듯하다. ‘금수레’에서는 신선로도 코스에 포함되는데 이는 우리가 아는 신선로와는 다르게 들깨탕에 조랭이떡과 배추 같은 야채를 넣어 끓인 것으로 장을 넣지 않은 따끈한 국물이 개운하다.

코스 요리의 즐거움은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데 있다. 접시가 비워질 만하면 나오는 음식은 일단 눈으로 먹고 내 앞접시에 덜어 그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코스 요리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사치다.

식사를 제외하고 모두 14가지의 요리(수레정식)를 맛보니 함포고복을 할 지경이다. ‘금수레’ 유태욱 대표는 한우를 고집하지 않는다. 대신 호주산 1등급 고기를 쓴다. 어줍지 않은 한우보다 확실한 수입 쇠고기가 낫다는 말이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난 이 음식점은 미술관처럼 조용하다. 손님들은 종용히 요리를 즐기고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전원도 눈을 편안하게 한다. 유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음식점에도 ‘물’이 있는 듯하다. 손님의 격이 떨어진다 싶으면 오던 손님이 귀신같이 알고 발길을 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음식점에서도 ‘물’ 관리를 해야 하는 세상이 온 모양이다./이재현 기자

출처:한겨레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