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문숙,이만희 감독과 '뼈 녹는'사랑
산문집 '마지막 한해' 통해 둘의 사랑 풀어내
2007-08-04 뉴스관리자
현재 미국 하와이에 체류중인 영화배우 문숙이 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고 이만희 감독 타계 직전 마지막 해에 나눈 사랑을 '마지막 한해'(창비)라는 책을 통해 고백한 것.
문숙은 이감독의 작품인 '태양 닮은 소녀'로 1974년 한국연극영화상(현 백상예술대상) 신인배우 부문을, '삼포 가는 길'로 1975년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당시 일간지와 주간지 등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신인 탤런트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문숙은 스무살이 되던 해 '태양 닮은 소녀'의 오디션 현장에서 이감독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이감독을 처음 본 순간을 "심장이 멎는 듯 가슴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비록 23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내 서로의 소중함을 느낀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있다. 180㎝의 이감독이 무동을 태우며 거리를 활보한 이야기, 이혼 후 어머니를 모시고 세 아이와 함께 서울 자양동 집에 살던 이감독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숙은 그가 유난히 예뻐했던 막내딸인 이혜영과의 만남도 소개한다.
'태양 닮은 소녀'의 음악을 위해 만난 젊은 작곡가 신중현은 이감독에게 새로운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이감독은 신중현의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싶네'라는 가사의 '미인'을 영화 주제가로 실었다.
나이 어린 처녀로서 유명인인 40대 이혼남과의 사랑으로 인해 세상의 눈을 피할 수 없었던 점도 나온다. "전혀 불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이나 관객이 우리의 나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애매한 일"로 표현했다.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인 '만추'가 '7인의 여포로'의 한 장면때문에 1964년 영화감독 최초로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구속돼 감옥에 갇힌 경험에서 나온 영화라는 것도 소개된다.
황석영 원작의 영화 '삼포 가는 길'을 찍기 전 중학교에 입학하는 막내 혜영의 교복과 준비물을 함께 사는 일상의 행복을 누렸던 문숙은 "이감독과 자그마한 절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감독이 1975년 '삼포가는 길' 후반 녹음 작업 도중 갑자기 쓰러져 1주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다 일반 병실로 옮긴 후 이틀 만에 사망하면서 둘의 사랑은 막을 내렸다는 것.
이후 결혼과 이혼 후 아이 둘과 미국으로 가 미술사를 전공하고, 명상과 요가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문숙은 30년 만에 뉴욕 링컨센터에서 그를 알아본 한 지인의 권유로 '삼포 가는 길'을 보게 된 순간 자신을 옥죄고 있던 것을 느끼게 됐다.
그는 "만나지 않으려고 그토록 도망다니던 영화 '삼포 가는 길'이 30년 만에 나를 찾아내고 만 것이 운명적으로 여겨졌다"며 이감독 타계 후 자신의 삶이 "말 한마디 없이 내 곁을 훌쩍 떠난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미움으로 얼어붙었고, 그리 될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증오, 그리고 그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온통 뒤엉켜서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고 고백했다.
30년 만에 만난 '삼포 가는 길'을 통해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창비 문학출판부 김정혜 씨는 "문숙 씨가 출판 의사를 밝혀와 펴내게 됐다. 이감독의 유족인 이혜영 씨는 책 출판 사실을 모를 것이지만 고인이나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저자의 인생에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와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