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없~~~~~~냐? - 디 워(2007)

2007-08-05     연합뉴스 블로그

(아래 글은 연합 뉴스에 실린 블로그 입니다. 내용이 매우 재미 있어 옮겨 왔습니다ㅡ편집자)

영화의 감상을 쓰기전에 내가 영화를 보러 가기전에 생각하고 결심한 이야기를 먼저 적어보겠다.

1. 영화는 원래 처음부터 '볼거리'였고, '돈벌이'였다. 아무리 좋은말로 치장하고 미화시켜봐야, 뤼미에르 형제는 활동 사진으로 기차와 퇴근 시간의 공장을 찍어 볼거리로 제공하고 돈을 벌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멜리아스의 <달나라 여행기>도 역시나 마술사 출신의 멜리아스가 트릭을 섞에 즐길만한 볼거리를 만들어 돈을 벌었던 것이 영화의 시초다. 영화가 처음 발명되고 100여년이 흐르면서 (작품성과 예술성을 떠나)최소한의 만듦새를 따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 만듦새도 관객들이 돈내고 봐놓고 돈이 아깝냐 안아깝냐를 평하는 것이다. 적어도 대중영화는 그렇다. 나는 <디워>를 보러가면서 심형래 감독이 그렇게 자신있어하는 볼거리를 즐기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스토리가 유치하고 후져도 불평하지 않으리라. 이무기가 LA시내를 신나게 때려부수는 장면이나 실컷 즐기고 오리라 다짐했다.

2. 최근의 여론을 보면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다. 이것은 비단 작년의 <괴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 현상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비난하고 옹호하는 논리들이 워낙에 원색적이고 유치해놔서 나는 최대한 중립을 지키리라 다짐했다. 그 개싸움에 끼어들기엔 나는 너무 피곤한 사람이다. 게다가 굉장히 게으르다.

3. 보기싫어도 볼 수 밖에 없었던 스포일러(디워에 이런게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에는 마지막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심형래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가 삽입되어 있다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DVD 감독 코멘터리같은 내용이었다면 이렇게 논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심형래 감독은 애국심에 호소하고, 열정을 전시한다(고 한다.) 나는 <디워>를 국적 불명의 블록 버스터 괴수영화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네셔널리즘에 넘어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위의 세가지 사항을 충분히 숙지하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영화관을 찾아서 오늘에야 비로소 <디워>를 관람했다. <디워>는 아주 간단한 영화다. 나쁜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어 승천할려고 500년 만에 돌아와서 난동을 피운다는 스토리도 간단하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간단하다. 볼거리가 많고 기가막히게 멋진 비주얼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도 간단하다. 영화의 목적도 간단하며, 심지어는 연출도 간단하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보고 얻은 결론도 간단하다.


-다른건 다 모르겠는데, 영화가 하도 산만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비꼬는게 아니라 진짜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낀 사실이다. 90분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런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어딜 그리 쏘다니는지 LA에서 500년전 조선으로. 다시 LA로. 남자주인공에서 여자주인공으로. 이무기에서 부라퀴군단으로. 속도감있게 편집된 장면들은 전혀 유기적이지 못하다. 스토리가 워낙 간단해서 겨우겨우 영화를 따라가는거지 사실 중간중간 영화를 놓칠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 '쥐약먹은 롤러코스터'같은 영화는 이렇게 엉성한 구성과 편집에도 지루할틈을 주지 않는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짜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선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가 싸울 때 좀 지루했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90분이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상영이 끝나자 나는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앞서 다짐한 것들은 모두 잊혀지고 스토리에 대한 의문점만 끊임 없이 떠올랐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원색적으로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심형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야심을 집고 넘어가야한다. 그는 절대로 <디워>를 괴수영화 매니아들을 위한 컬트 시네마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어보였다. 영화에서도 그랬고, 그가 출연한 TV 쇼프로그램이나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밝혔다. 평단의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악평에 투덜거리며 괴수영화는 괴수영화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잃는다. 사실 <디워>는 장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도 허점 투성이의 영화이다. 장르적 관습(혹은 정석)을 그대로 따라갔다고 빈약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말은 누가봐도 블랙코미디인 것이다. 빈약한 스토리가 영화의 절대적인 허점이 될 수는 없지만, 빈약한 연출력은 뼈아픈 재앙이다. 이무기가 LA에서 활개친다는 설정은 (유치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영화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것은 온전히 감독의 연출에 달려있다. LA에서 이무기가 지랄발광을 한다. 다 때려부순다. 아싸 좋구나. 라는 것이 <디워>에서는 그저 '전시될' 뿐이다. '왜 이무기가 설치나요?' 라는 물음에 '500년전에 여의주를 못 먹었거든'이라는 대답만 던져놓을 뿐 그 이외의 모든 것을 관객에게 일임한다. 그래놓고는 어때? 비주얼 끝내주지? 내가 이거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어. 볼거리가 많으면 되잖아. 영화가 원래 그런거 아냐? 라는 식의 똥배짱을 부리기엔 2007년의 관객의 기대치는 너무 높다.

둘째로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던 CG조차 높은 성취를 이룬 것 같지 않았다. <트랜스포머>는 기계를 CG로 만들어서 티가 덜나고, <디워>는 생물을 CG로 만들었기때문에 어설프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을까. LA시가전에서 성냥갑같았던 탱크는 생물이라서 그렇게 조악한 비주얼을 보여준 것일까? 날아다니던 헬기는 익룡과 헤깔려서 그렇게 어색했던 것인가? (내가 제정신이라고 믿고 있는 한)아마 둘 다 아닐 것이라 믿는다. 부라퀴 군단의 만화같은 비주얼은 넘어가더라도 그나마 볼만했던 이무기는 실사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관객에게 현실감을 빼앗고 미니어쳐 세트와 이무기와의 괴리만 남겨놓았다. 조선시대에서는 또 어떤가. 조선시대의 마을 주변이 사막이라는 것은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전생의 이든과 세라가 도망칠 때, 나타난 도사의 액션은 무슨 우뢰매를 보는줄 알았다. 중간중간 주인공이 목에 달고있는 목걸이에서 빛이 나오는 장면들도 심각하긴 마찮가지다.

세번째로 배우들의 발연기. 이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조선시대 장면의 한국인 배우의 연기를 보라. 그저 웃을 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선한 이무기는 무슨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데우스엑스마키나도 아니고, 한방에 부라퀴 군단을 쓸어버리고는 악한 이무기와 싸운다. 그런데 문제는 인물들과 아무런 교감도 없이, 말그대로 뜬금없고 뻘쭘하게 등장해서 개고생한 주인공들에게 여의주나 뺏어가지고 승천하는데. 이런식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단순함이 그나마 영화의 산만함을 상쇄시킨다면 비꼬는 이야기일까.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심형래 감독은 언제나 퀄리티로 승부하겠다, 작품을 봐달라고 했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떨어지는 퀄리티야 위에서 계속 까왔으니 넘어가고, 영화 전반에 걸쳐 감독은 이것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임을, 감독은 심형래임을 강조한다. 웃길려고 넣은 것 같은 심씨네 동물원 부터 시작해서, 말도 안되는 코리아 레전드, 끝부분에 흐르는 아리랑, 엔딩 크레딧의 다큐멘터리까지. 심형래 감독은 네셔널리즘에 기대어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호소문의 내용이야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말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자기 것으로 사유화시키는 것은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코미디인 것이다. 분명 영화는 할리우드 A급 스텝들과 함께 제작했다고 홍보할 정도로 공동의 작업물인데, 개인적은 감상과 노력했다는 호소를 엔딩크레딧에 올리는 것은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신세한탄을 스케일이 크게 한 것으로 밖에는 안보인다. 무슨 올림픽 중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떠올라서 불편했다.

분명 심형래 감독은 돈을 벌려는 마인드를 가진 감독이지, 절대 예술적인 성취를 이룰려는 감독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를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기를쓰고 긋고 있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돈주고 산 물건이 후지면 화가나고 짜증이 나는 법이다. 장사꾼이 '지금까지 이태리산만 쓰던 때수건을 한국에서도 이렇게나 만들었다. 나는 이게 자랑스럽고, 당신들도 자랑스러울 것이다.'라며 홍보해서 샀더니 구멍난 때수건이라면 화가나고 비난을 해도 마땅한 것이다.




자, 지금껏 실컷 깠으니 좋았던 점을 말해보자.(사실 아직도 깔 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진심으로 밤을 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그만두기로 한다.) 먼저 심형래 감독의 빛나는 개그 센스는 이런류의 영화에서도 눈이 부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라퀴의 대장이 차에 두번 치이는 장면은 포복 절도할만한 센스가 돋보였다. 시종일관 진지한 주인공들 사이에서 군데군데 터져나오는 웃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한 성취다. 좀 더 자신의 재능을 영화 속에 버무렸으면 훌륭한 컬트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심형래 감독의 개그에관한 감수성은 놀랍다.

미안하다. 장점은 이게 끝이다.-_-

정리를 해보자. 심형래는 돈을 벌려는 마인드를 가진 상업영화 감독이다. 최대한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 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심형래는 자신의 영화에 그 존재감을 언제쯤 지울 것인가. 자신이 영화에서 끼워넣은 엔딩크레딧이 오히려 그에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더 심화시킨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영구 없다~ 라고 외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기가 발벗고 나서서 영구영구영구영구영구영구를 끼워넣더라. 우리는 언제까지 '영구심형래'가 아닌 '영화감독 심형래'의 온전한 영화를 기다려야 하는가. <디워>가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후지다.

영구 없~~~~냐? 진짜?





사족. 너무 심하게 지랄거려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것도 영화에대한 애정으로 봐달라고 하면 너무 뻔뻔한가?-_- 그러나 나는 정말로 편건도, 선입견도 가지지 않을려고 했으나 그것에 실패했다. 이것이 내 잘못이라면 당신이 내게 열심히 돌을 던져도 무방하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디워>가 영화로서 온전하게 좋은 작품이고 이렇게 까일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달게 욕을 먹겠다. 하지만 단지 심형래 감독의 인간승리에대해, 국가대표 영화라는 자부심에,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할리우드 콤플렉스때문에 나를 비난하겠다면 나도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