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지는 대충~'약관에 다 있다'큰소리

섣부른 확인 서명이 '덫'.. "모든 경우에 대해 설명 불가능"

2012-03-05     지승민 기자

보험업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분쟁 중의 하나가 약관 고지를 둘러싼 보험사와 소비자의 날선 갈등이다.

상품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는 피보험자의 주장과 약관에 명시돼 있다는 보험자의 입장이 번번히 대치하는 상황.

보험 가입 시 설계사의 설명을 들은 후 깨알같은 글씨로 기재된 약관의 모든 조항을 읽어보고 이해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보험자가 '안내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 책임을 묻고 보상처리를 요구할 수 있을까? 현행 상법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고객에게 보험 약관을 전달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보험사의 의무가 약관내용 전부가 아닌 ‘계약체결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항’까지만 해당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보험 상품의 내용과 보험료율 체계, 지급방법, 보험자의 면책사유 등이 그것이다.

보험계약이 체결될 때 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내용의 약관에 구속돼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험자는 보험약관의 교부·설명의무를 갖는다.

그러나 약관을 교부하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 설명한 이상 보험계약자가 기타 약관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모두 인지하였는지 여부를 체크해야할 책임까지는 요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경우의 수, 설명할 수 없어"

5일 인천 강화군에 사는 김 모(여.52세)씨는 더케이손해보험의 불충분한 약관 설명 탓에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몇 년 전 소유하고 있던 승용차 1대와 화물차 1대를 남편 조 모(57세)씨의 명의로 동시에 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얼마 전 주차돼 있던 화물차를 빼던 중 부주의로 승용차의 범퍼를 망가뜨려 보험회사 측에 대물배상처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김 씨는 “두 대 각각 등록세와 취득세를 따로내고 있는데 보험처리가 왜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보험에 가입할 당시 ‘두 차가 부딪혀 사고가 날 경우에는 대물배상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케이손해보험 관계자는 “두 대가 한 사람의 명의로 등록돼 있고 자차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도 대물배상 범위에서 벗어난다”며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를 따져 모든 약관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서명은 ‘약관을 이해했다’는 의미

보험사는 보험약관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설명의 방법에는 제한이 없으며 보험가입자로부터 받는 '확인 서명'이 가장 대표적인 입증 방식이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명시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이 모(여)씨는 얼마 전 농협 공제보험 해약환급금이 적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매달 61만원씩 16개월 동안 꾸준히 납부해 980만원 정도를 모았지만 중도 해지로 인해 그 중 7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

이 씨는 “약관에 ‘어느 정도 손실이 있다’고 적혀있긴 하지만 상세한 수수료체계를 알지 못했다”며 농협 측에 고지 불충분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저축성보험의 해약환급금 기준에 따라 해약금을 지급했다. 당시 고객께서 약관을 이해하시고 서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착오가 있었다면 전액 환급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저축성보험은 보장성보험과 다르게 만기 시 지급되는 돈이 많은 보험으로서 일반적으로 목돈 마련을 목적으로 가입하는 장기성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 통신판매, 약관 송부만으로는 불인정..보험사 책임 어디까지?

전화 등 비대면 통신판매의 경우도 계약 전 약관 고지의 의무는 면대면 판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계약 체결 후 보험약관 안내문을 송부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추상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

한편 보험계약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거나 이미 널리 알려진 면책조항 등의 경우 설명해야만 하는 ‘중요한 사항’에서 제외된다.

금융감독원 표준약관에 따르면 피보험자의 고의로 발생한 의료비, 전쟁과 기타 변란으로 생긴 사고, 해외 소재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의료비, 자동차보험(공제 포함) 또는 산재보험에서 보상받는 의료비 등이 보험사의 면책조항에 속한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보장 담보를 금지한 것은 아니며 보험사 개별상품별로 특약 형태와 같이 담보를 추가했을 경우에는 보상받을 수 있다.

한편 국내 생보사는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알리안츠생명, 미래에셋생명, 흥국생명, 라이나생명 등 20여개 업체가 있으며 손보사는 삼성화재, 동부화재, 현대해상, LIG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등 14여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농협금융지주가 NH생명보험과 NH손해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업계에 본격 진출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지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