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편법 설계사에 '무늬만' 처벌?
처벌을 회사 내부 규정에 전적으로 맡겨 징계 실효성 의문
“자사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설계사에 대한 처벌을 사측 내부 지침에만 맡긴다니...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있나요?”
보험 불완전판매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만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원인을 제공한 설계사의 처벌 방식이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보험상품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은 설계사의 안내에 기대어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만능 상품’인양 설명해 상품 계약을 유도해 놓고 추후 문제점이 드러나 담당자를 찾으면 증빙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발뺌하기 일쑤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알리안츠생명, 미래에셋생명, 흥국생명, 라이나생명 등 20여개 보험업체들에 대한 관련 소비자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소비자들이 이런 난관을 뚫고 힘들게 설계사들의 편법여부를 확인했다한들 과연 어떤 사후조치를 통해 관리되는 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현재 보험업계는 불완전 판매 등 내부지침을 위반한 설계사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각 회사별 내부 지침대로 실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검사국 조사를 통해 내부 규정의 강도나 이행 여부에 대해 지도와 감시를 진행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설계사가 편법적 판매를 해도 보험사는 모르는 척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또한 문제가 되는 직원에게는 징계 처분을 한다지만 사실상 어떤 조치를 받는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제3의 기관 마련 등 규정이 강화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만기일 앞당기려 추가납입했더니 새상품 가입
13일 대구 달서구에 사는 시 모(남)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7월 H생명의 보험상품에 가입해 매 달 11만4천원씩 납부했다.
지난 1월 설계사로부터 월 8만4천씩 더 내면 30년인 기존 보험의 만기일을 10년으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추가 납입을 결정했다고.
2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부담스러워 10만원선으로 낮출 수 없는지 묻자 연 2천만원 이상이 되어야 10년 만기가 가능하고 5년이면 원금보장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보험약관을 받아보고 원금보장이 5년이라는 부분이 미심쩍어 설계사에게 재차 확인했고 확답을 받았다는 것이 시 씨의 설명.
그러나 본사에서 결려온 가입확인 전화를 받고 설계사가 안내했던 추가납입이 실상은 새로운 상품에 월 8만4천300원을 내고 신규 가입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시 씨는 “전화한 담당자에게 정황을 설명하니 당황하며 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며 책임을 미뤘다”며 “보험 2개를 유지하는 하는 것은 1개와 엄연히 다른데 사기와 마찬가지”라고 억울해했다.
이에 대해 H생명 관계자는 “청약 철회가 유효한 기간이어서 고객분이 요청하신 환급이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며 “설계사의 단순 실수 가능성을 포함해 어느 부분에서 안내가 잘못 이루어졌는지 정확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 보장혜택 업그레이드 빌미로 슬그머니 신규계약
서울 강북구에 사는 이 모(여.36세)씨 역시 기존 상품의 보장 혜택을 업그레이드를 빌미로 신규계약을 몰래 체결하려한 설계사의 불법 영업행위를 고발했다.
이 씨에 따르면 그는 얼마 전 D생명 측으로부터 ‘10년 이상 가입을 유지하고 있는 우량 고객에 보험료 할인혜택을 드린다’는 안내전화를 받고 설계사와 만났다.
이 씨를 찾아온 김 모(여)씨는 "자녀들의 실비보험을 6천600원에 추가할 수 있고 보험을 완납시키면 약 1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등의 솔깃한 조건을 설명하며 재계약서에 서명을 받아낸 후 가입확인 전화 응대방법이 적힌 프린트를 넘겨주고 떠났다.
그러나 질문지의 내용이 신규 계약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담겨있는 등 다소 이상한 구석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설계사에게 묻자 그제야 새로운 상품명을 언급하며 신규가입임을 인정했다고.
이 씨는 “김 씨가 내 보험가입 현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담당자인 줄 알았다”며 “담당자도 아닌 직원이 고객 정보를 무단 도용해 허위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분개했다.
D생명 관계자는 “내부규정상 모집인이 고객 정보를 보기 위해서는 본인 동의를 얻게 되어 있어 유출경로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며 “불법행위가 밝혀질 경우 모집인에게 1개월의 모집활동정지 처분이 내려진다”고 답했다.
◆ 보험사와 설계사는 한통속?
보험소비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불완전 판매를 한 설계사에 대한 패널티 여부이다. 현재 보험 설계사에 대한 징계가 회사 내부규정에 따라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주장.
최근에는 금융소비자의 권익 강화를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 입법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내용이 대폭 축소된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보험을 비롯한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한 처벌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정작 금융회사와 직원에 대한 처벌 규정과 과징금이 크게 감소한 것.더욱이 금융소비자의 민원처리를 전담하게 될 ‘금융소비자 보호원’ 설립 역시 금감원 산하의 준독립기구 형태로 설치하기로 하면서 독립기구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반감됐다.
한편 보험연구원은 최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험모집인에게 고지수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지수령권이란 보험 계약의 변경, 해지, 통고, 고지를 수령할 법적 권한을 말한다. 보험계약 체결 때 가입자의 질병 상태 등 보험 계약에 영향을 끼칠 만한 중대 사안을 보험사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설계사 또는 대리점에 고지수령권을 부여하지 않을 경우 적어도 보험모집 때 설명 의무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보험사로 하여금 보험설계사 부정행위를 억제하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지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