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성곡 지정학적으로 최고위치…너무 많이 찾아”

2007-09-13     헤럴드경제 제공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었던 신정아 (35)씨는 평소 “내 직장이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성곡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지정학적으로 정말 최고”라 말하곤 했다. 정부종합총사와 언론사가 코 앞이고, 경복궁과 청와대가 지척거리니 이만한 곳이 또 있겠느냐는 것. 이 ‘노른자위 장소’에서 신씨는 수시로 드나드는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한껏 영향력을 키워갔다. 이에 따라 ‘신정아의 오빠들’이 차곡차곡 늘어갔다는 게 주위의 증언이다. 변양균 전 실장 외에도 신정아와 네트워크를 가지려는 ‘오빠들’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고 김성곤 쌍용 창업주의 저택을 개조한 성곡미술관은 광화문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 뒷동산(야외조각공원)까지 갖춘 아늑한 곳이다. 또 이곳 주변에는 내로라 하는 특급 한정식집이 즐비해 고위 공직자들이 식사 후 미술관에 자주 들리곤 했다.


신씨 자신도 “업무에 바쁠 때가 많은데 걸핏하면 ‘짜르르한 사람이 왔으니 내려와보라’고 해서 불려간 적이 많다”고 밝혔다. 인근 지역에 서울 장안에서도 워낙 유명한 한정식집이 많아 고위인사들이 자주 들렀기 때문이다

특히 신씨가 2005년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고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잇따라 쓰면서 “성곡에 가면 ‘신정아’라고 똑 소리 나는 큐레이터가 있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찾는 이들이 더 늘었다. 신씨는 “내가 미혼이니까 치근덕대는 인사가 적지 않다. 유명인사도 많다. 불쾌할 때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여자라서 훨씬 출세하기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하곤 했다. 신씨는 이곳에서 애호가를 대상으로 ‘성곡미술아카데미’라는 강좌도 개설했는데 변 실장도 이 아카데미에 종종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곡미술관은 김석원 전 쌍용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씨가 관장이었지만 박 관장은 보고만 받았을 뿐 미술관 운영은 신씨가 도맡다시피 했다. 더구나 기업 등의 후원금은 거의 전시를 위해 협찬된 것이서 신씨가 대부분 집행했다. 급여는 월 240만원에 불과했지만 그가 주무르는 돈은 막대했던 셈.


한편 성곡미술관에는 본관과 별관 사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숲속 야외조각공원이 펼쳐진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다. 야외조각공원 끝자락에는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숲속 카페가 있는데 성곡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 신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미술관에 와서 전시도 보고, 이 카페의 명물인 녹차빙수도 맛보라고 권유하곤 했다.


한편 신씨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고위층 인사라든가 실력자들로부터 “그림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곤 했다. 변 실장의 경우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5년 6월 집무실 그림을 바꾸면서 신씨에게 추천을 요청해 작품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검찰이 신씨의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변 실장이 당시 성곡미술관의 출품작을 고가에 구매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변 실장은 이 작품을 정부예산으로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 실장 외에도 신씨에게는 “어떤 작품을 사면 좋겠느냐”며 작품구입을 의뢰한 이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작품 중개에 신씨가 적잖이 관여했을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모 미술관 큐레이터 A씨는 “원래 미술관 큐레이터는 작품을 소개하거나 작품을 판매하는데 개입해선 안되도록 돼 있다. 큐레이터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신씨 같은 경우 워낙 발이 넓고, 실력자라든가 여유있는 컬렉터들이 포진해 있어 투자할 만한 작품을 추천하고 매입을 주선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주위에 뜨고 싶어하는 작가들로부터 그림 선물 등을 적잖이 받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신씨는 동료 큐레이터들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낼 정도로 베일에 쌓인 인물이어서 그저 고위층, 실력자, 원로들을 잘 다루는 인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