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상품 가입은 쾌속, 해지는 완행

소비자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 내세워 과도한 해지방어

2012-04-26     지승민 기자

간단하고 빠르게 이뤄지는 보험 가입절차와 마찬가지로 해지 역시 쉽고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갑작스레 걸려온 상담원의 전화를 받고 상품에 대해 꼼꼼히 따져볼 여유도 없이 보험에 든 소비자들은 해지도 가입할 때와 비슷한 간단한 절차만으로 금방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험 해지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고객을 유치한 담당자 즉, 오프라인에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설계사나 주로 전화로 가입을 권유하는 상담원과의 대화를 거쳐야만 한다.

이같은 가입자들의 불만에 대해 '고객이 계약해지를 희망하게 된 계기를 파악해 가능한 한 불만을 해소시키고자 노력한다'는 게 보험사들의 스테레오 답변.

한 소비자는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는 끈질기게 전화하지만 막상 해지를 신청하면 연락도 끊기고 시간도 한없이 질질 끌어 속이 탄다”고 꼬집었다.

◆ 가입 취소 요청 무시하고 보험료 결제 

26일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정 모(남.44세)씨에 따르면 그는 얼마 전 L손해보험에서 걸려온 가입 권유 전화를 받고 보험을 계약했다.

목돈을 버는 보험이라는 설명에 솔깃해 충동적으로 가입을 결정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금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안 돼 콜센터 측에 해지를 신청했다는 김 씨.

통화했던 담당자에게도 바로 연락해 해지의사를 밝히자 금방 다시 전화를 주겠다며 말을 끊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잠깐 사이 가입을 축하한다며 첫 달치 보험료 20만원이 결제됐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상담원은 “결제부서가 달라 아직 전달이 안 된 모양이다. 관련 우편물을 받고난 다음에 해지를 해도 늦지 않는다”고 안내했다고.

업무시간이라 전화를 길게 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일단 동의했지만 굳이 우편물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잠시 후 콜센터 측에 서류 발송 중지를 요청했고 상담원은 절차가 있어 일주일정도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약속했던 날짜에 걸려온 전화를 못 받아 이틀 뒤 다시 콜센터에 취소신청을 넣었고 그날부터 또 일주일을 기다려 해지를 마무리했다”며 “가입과 결제는 순식간에 이뤄지더니 취소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이에 대해 L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해지절차는 일반적으로 콜센터에 고객의 의사가 접수 되면 담당직원이 전달받아 회신하는 단계를 거쳐 끝난다”며 “보험을 해지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짚고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 가입은 일사천리 해지는 ‘삼만리’

서울 양천구에 사는 장 모(남.31세)씨 역시 보험해지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장 씨는 얼마 전 D화재 저축보험 관련 상품안내 전화를 받고 복리저축 보험에 가입했으나 막상 청약서와 증권을 받아보니 안내받았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어 청약 철회를 요청했다.

신경질적으로 돌변한 담당 설계사의 태도가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안내받은 보험계약 철회 진행 절차대로 택배를 이용해 청약서와 증권, 사은품으로 받은 도서상품권 2만원을 돌려보냈다고.

며칠이 지나도 설계사에게 연락이 없어 고객센터로 문의하자 “계약 철회는 고객센터가 아닌 담당자와 직접 통화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와 무작정 설계사의 전화를 기다려야했다.

장 씨는 “결국 마지막 전화통화에서까지 철회 이유를 캐물으며 설득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며 “가입은 간단하더니 해지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해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D화재 관계자는 “담당 설계사가 경험이 부족해 고객응대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앞으로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 보험 해지절차 간소화는 불가능?..카드사는 절차 개선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는 보험을 해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전화상으로 상품에 대한 장점만을 강조하는 상담원의 말에 현혹돼 보험에 가입했지만 추후 약관을 확인한 후 기대에 못 미치거나 자신의 납부능력 등 갖가지 사항을 고려해 취소를 결정하는 경우 냉랭해지는 보험사의 태도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것.

삼성화재, 현대해상화재, 동부화재, 흥국화재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국내 보험사들은 통상 콜센터를 통해 보험해지 신청을 받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험사들이 '서비스 개선' 운운하지만 목적은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계약을 유지하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린다. 결국 이러한 복잡한 절차는 과도한 해지방어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한편 카드사들은 최근 신용카드를 해지하기 위해서는 카드사 상담원과 직접 통화를 해야 했던 기존 해지절차를 통화 없이도 각 카드사의 자동응답전화(ARS) 및 인터넷 홈페이지, 영업점 등을 통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지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