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예금 잘못 인출하면 민·형사 소송?
업무 실수 책임 떠넘기려 막말에 협박 '횡령죄'고발까지
"자신이 전산 처리를 잘못해 생긴 문제를 두고 협박에 이어 형사고발이라니...이런 적반하장이 어딨습니까?"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인해 억울한 경험을 한 소비자가 울분을 토했다. 소비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막말과 협박에 시달리고 민사.형사소송까지 제기당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4일 경남 진해시에 사는 배 모(여.39세)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9월30일 오전 우체국 창구에서 현금 900만원을 인출했다.
이날 업무를 마치고 오후 5시 반이 지난 후 휴대폰을 확인한 배 씨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9통의 전화가 왔던 사실을 확인했다. 마지막 문자메시지 1통을 본 후에야 우체국 직원이 자신을 급하게 찾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문자의 내용은 ‘통장에서 전산상 지급처리가 되지 않았으니 바로 우체국을 방문해 업무처리를 도와달라’는 담당 직원 이 모(남)씨의 요청이었다. 배 씨가 인출한 900만원이 통장상에는 미인출로 처리되어 일일 결산이 맞지 않게 된 것.
배 씨는 “저녁에 선약이 있어 개천절 연휴가 끝난 10월4일에나 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직원은 “기다릴 테니 늦게라도 꼭 와 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예상대로 저녁모임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고 우체국 직원에게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배 씨.
하지만 다음날인 10월 1일 오전 9시에 도착한 직원 이 씨의 음성메시지는 배 씨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 씨로부터 "오겠다는 약속을 안 지켰으니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형사고발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협박성의 내용이 남겨져 있었던 것.
이어 4일 10시께 또 한 번 '오늘 우체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고발조치 하겠다'는 험악한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수신됐다.
배 씨는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닌, 막말과 강압적인 직원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며 “심지어 전 직장동료로부터 ‘우체국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해 너에 대한 정보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씨가 나를 고발해 나 또한 그를 개인정보유출과 협박,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며 “아무런 죄도 짓지않았음에도 하루아침에 '횡령'이라는 죄목을 쓰고 경찰서를 여러 차례 드나드는 수모를 겪은 것에 대해 아직도 화가 치민다”고 하소연했다.
배 씨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우체국의 안일한 대처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우체국장이 전화상으로 사과하고 배 씨를 설득했지만 직원이 고객을 상대로 형사고발, 더 나아가 민사소송까지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게 배 씨의 설명.
당시 우체국 측은 “직원이 문제가 발생한 직후 휴직계를 제출해 관여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검찰에서 배 씨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자 이 씨는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판사 역시 배 씨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발송된 민사소송 조정서에는 ‘소송비용 및 조정비용은 각자 부담하며 배 씨는 교통비 등 50만원을 제외한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배 씨는 “이 씨는 자신의 업무과실을 덮기 위해 고객에게 죄를 전가했다”며 “이렇게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직원이 계속 우체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사건 초반에 직원이 고객을 만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노력을 했지만 연락이 안 되면서 점차 오해가 깊어진 것 같다”며 “휴직계는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게 예정돼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원의 판결문을 송달받은 후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지승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