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횡포로 5년간 신불자로 산 기막힌 사연

2007-09-17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카드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유통업체 계열의 대형 카드사가 요구하는 돈을 모두 입금했지만 해괴한 논리에 빠져 신용불량자가 된 채 5년 동안 살아온 기막힌 사연이 드러났다. 심지어 카드사로부터 연체된 돈을 내놓으라는 소송까지 걸렸던 그는 최근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돈을 갚을 필요는 없게 됐다.


그러나 가장 활발하게 사회생활를 해야 할 기간에 신용불량자로 살아온 그는 “잃어버린 5년을 어디서 보상받느냐”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빚 독촉을 할 때는 하루가 멀다고 전화하던 해당 카드사에서는 정작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자 연락을 끊어버리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2002년 박천수(당시 41) 씨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불경기로 인해 그동안 운영해오던 식당이 망해버린데다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 하던 박씨는 되는대로 마구 살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빛이 내려왔다. 2003년 11월. 카드사에서 먼저 900만원을 납부하면 빚을 탕감해주고 신용불량자 신분도 해지해주겠다고 제의를 해 온 것. 이번 일을 해결하고 앞으로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 생각한 그는 손에 잡히는 것을 모두 정리해 돈을 납부하고는 완납 확인서까지 받았다.


이상한 일은 2003년 봄께 발생했다. 재기를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그에게 카드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300만원이 연체됐으니 돈을 갚으라는 말에 박씨는 어이가 없었다. “완납 확인서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호통을 치자 카드사에서는 완납 확인서를 팩스로 받아갔고 한동안 또 잠잠했다. 그러나 담당 직원이 바뀔 때마다 박씨에계는 어김없이 돈을 갚으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박씨의 신용불량자 신분이 해지되지도 않은 것. 전세로나마 집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하려 했으나 은행에선 박씨가 신용불량자라며 대출을 거절했다. 수소문 끝에 박씨는 카드사에서 자신에 대한 신용불량자 신분을 해지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드사는 올해 1월 초 법원에 고소하기도 했다. 박씨는 완납 확인서에 ‘당사 카드(대출)금을 납부하였기에 발급한다’고 되어 있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준비하던 공인중계사 시험 준비까지 팽개쳐가며 8개월간을 재판에만 몰두했다.


재판부는 결국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1부 김승정 판사는 8월 9일, 카드사가 낸 대여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다. “지난 5년간 나는 카드사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신용불량자가 돼서 살았습니다.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집도 전세로 사지 못해 월세를 살고 준비하던 시험마저 재판 때문에 핑개쳐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드사에서는 여지껏 사과 전화 한 통 없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카드사의 일방적인 횡포 때문에 5년여의 인생을 신불자로 살아야 했던 박씨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혀 있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