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로비스트 린다 김, 그녀의 못다한 이야기

2007-10-02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휴대폰이 울렸다. 붉은색 에나멜을 곱게 칠한 손이 향했다. 몽블랑 볼펜이 꽂혀 있는 탁자 위 루이비통 다이어리에는 수많은 사람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다. 속지 가장자리에는 손때가 묻어 까맣다. ‘저기 그녀가 친하다는 가수 조용필의 연락처도 있을까?’


긴 속눈썹을 깜박이던 그녀가 전화 속 상대에게 입을 뗀다. 허스키하고 다소 빠른 듯하게. “나, 린다 김이에요.”


국방부 장관에게 ‘사랑한다’는 연서를 받은 미모의 여인, 그리고 무기 로비스트. 올해 한국 나이로 벌써 쉰 넷이다. “여전히 피부가 곱다”는 기자의 칭찬을 “나는 이제 할머니인데…. 예쁘긴”이라고 되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8㎏이나 갑자기 불어버린 살 때문에 다이어트 중이었다.


살이 불은 건 2000년 문제의 그 사건 이후 찾아온 우울증 때문. 3년간 그리고 아직도 항우울제 세 알씩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는 린다 김(한국명 김귀옥)은 그러나 A급 로비스트답게 여자로서의 사랑도 인생도 늘 A급이었다는 자신감이 말끝에서 묻어났다.


‘계약 실패율 0’. 에어쇼에 가면 지정석이 있고 원하기만 하면 최신형 비행기에 탈 수도 있다는 그녀는 “한국에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신정아와 엮이면서 권력형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권력형 스캔들? 날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잘라 말했다.


브라질과 터키, 그리고 한국 공군과의 일이 남아 있어 들어 왔고, 여동생의 암 수술 일정 때문에 한국에 더 오래 있게 됐다가 괜시리 입방아에 올랐다. 인터뷰 도중에도 ‘신정아’에 대해 묻는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짤막하게 자신에 대해 정의했다. “골치 아파. 난 장사꾼이라고.”


장사꾼이 된 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초반 UC버클리 재학시절.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명 무기중개상 카쇼기 밑에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아무것도 몰랐지. 서류 전달 심부름만 줄창 시켰으니까. 밥먹을 새도 없이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한 3년 하다 보니 보이더라고. 이게 군수물자가 옮겨 다니는 거구나. 그 흐름이 말이지.”


불황에도 무기산업과 곡물, 원유산업이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녀를 학교 밖 로비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도 마치지 않았다. 3년 배우고 숨 고를 새 없이 30년 로비스트 생활을 한 셈이다. “나도 불쌍하지?” 그녀는 살짝 말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내비쳤다.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다 했다. 단 한번을 빼고는. 바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과의 스캔들로 회자되는 백두ㆍ금강사업이다.


“이 전 장관이 이 사업에 뛰어들 때 나한테 한 말이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이 사업만큼은 국가관을 갖고 임해 달라고. 난 정말 그랬어.”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한국은 미국에서 무기 수입시 국가 대 국가로 거래를 하는데 이게 수백만달러를 더 내는 거라고. 회사에서 마진 붙인 데에 나라가 또 3~7%까지 마진을 붙이니까. 한두 푼도 아니고. 내 나라인데 왜 우리가 돈을 더 내나. 그래서 회사와 직거래를 하자고 했지. 그랬더니 국방부에서 안 된다더군. 귀찮은 거지.”


쉽게 말하면 미국 감청장비 제조업체인 E시스템 사에 속해 소속업체의 감청용 정찰기 장비를 공군에 ‘밀어야’했던 그녀는 심적 소속을 ‘한국’으로 바꿨다. 그러나 밀었던 곳이 사업 진행 중에 E시스템 사와 인수ㆍ합병 돼 더 큰 오해를 샀다고 했다.


“지금 와 얘기하면 다 변명이지. 뭐…. 근데 그 당시 경합 업체만도 12군데였어. 막말로 12군데 모두 국방부에 끈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 그때까지 계속 하던 F사를 밀어냈는데…. 내 스스로 사방에 적을 만든 셈이지.”


‘사랑하는 린다’로 시작되는 국방장관의 쪽지. 그 뒤로 이어지는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놨다.


“미국은 로비스트를 발표하고 하다 못해 접대를 해도 공식 예산 집행을 통해 해. 그러니 떳떳하지. 한국은? 불법이잖아. 그러다 보니 호텔방에서 몰래 만날 수밖에. 그런데 생각해봐. 내가 침실 있는 일반 객실에서 만나겠어? 그럼 ‘날 잡아잡수’지. 스위트룸을 잡아서 거실에서 만났어. 근데 호텔방에서 만나고 어쩌고….”


손사래를 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무기 중개를 하다 보니 주로 만나는 사람이 남자고, 남녀가 만나다 보니 서로 그렇지 않나. 내가 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상대가 그럴 수도 있고…. 인생에서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있나. 돈 버는 것도, 살려고 바둥대는 것도 까놓고 보면 다 추하지만 순수한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 그런데 한국에서 일어난 스캔들은 상식 밖이었어.”


벌떼처럼 몰려드는 언론에 린다 김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절망했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비행기를 보고 고철을 들여 왔다는 세간의 평가가 로비스트로서의 자존심을 꺾었고 1년8개월간 서로 신의를 지켰다는 이양호 전 장관과의 스캔들도 가슴 아팠다.


“지금도 폐가 될까 연락을 안 하지만 인간적으로 (이 전 장관을) 참 좋아해. 한국 최고의 비행기록을 가진 파일럿 출신 장관인데…. 첫 공군 장관이라 (국방부 내) 견제가 워낙 심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내 두 딸(그녀는 올해 나이 28세와 26세 된 딸 둘이 있다)의 이름을 걸고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다”는 린다 김은 “이것만은 확실하다. 기독교 신자인 장관이 날 전도하려고 늘 기도를 해줬고, 나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우린 부적절한 관계보다도 더 친한 솔메이트였다”고 전했다.


린다 김 말고도 여성 무기 로비스트는 프랑스에 딱 한 명뿐이다. A부터 G까지 로비스트 등급을 매겼을 때 린다 김은 A+++이다. 몸값이 가장 비싸다.


“할리우드 스타를 보면 꼭 방 몇 개, 욕실 몇 개 저택으로 성공 정도를 표현한다. 그렇게 말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녀는 미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 15개의 방이 있고, 차를 타고 구경해야 하는 대저택이 있다고 했다. 우울증 이후로는 너무 넓어 자살할까 두려워 발렌시아 농장에 집을 따로 얻었다던 그녀에게 “저택이 100억원 정도 하냐”고 묻자, 곧바로 답했다. “그 돈이면 가정집 정도 얻는다”고.


린다 김은 국내에서 일고 있는 로비스트 양성화 움직임에 대해 “too late(너무 늦었다)”라고 답했다. “양성화가 늦어지다 보니 로비스트는 비리를 저지르거나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각인돼 있다”라는 설명과 함께. 그는 “지금 한다고 해서 과연 될까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성연진ㆍ김상수 기자(yjsung@heraldm.com)

사진: 박현구 기자(phko@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