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저축은행 인수 외면..매각 차질 빚나
2012-05-29 임민희 기자
금융당국은 대형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사들이 저축은행을 추가로 인수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정작 이들 지주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입김을 받고 있는 산은금융지주와 기업은행, NH농협금융지주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이들 은행 역시 저축은행 인수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저축은행 매각 작업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솔로몬 등 4개 영업정지 저축은행에 대한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매도자 실사를 거쳐 내달 중순경 매각공고를 낼 계획이다. 매각공고 후에는 2주 동안 예비입찰제안서(LOI)를 접수하고 예비입찰자들이 저축은행 자산실사를 마치면 7월쯤에는 본입찰에 들어갈 방침이다.
예보는 매각공고에 앞서 솔로몬저축은행의 자회사인 부산ㆍ호남솔로몬저축은행, 한국저축은행의 자회사인 진흥ㆍ영남저축은행과 손자회사인 경기저축은행을 각각 패키지로 묶어서 매각할 것인지 등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4개 저축은행 매각개시 20여일을 앞두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저축은행 인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저축은행을 인수했던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이미 불참의사를 밝힌 상태. 특히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지난 24일 지주행사에서 "저축은행 추가 인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번에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KB저축은행도 적자가 나고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지난해 2월 삼화저축은행(현 우리금융저축은행)을 인수해 현재 강남점과 신촌점 등 2개 영업점을 보유하고 있으나 서민금융 확대 차원에서 추가 인수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우리금융 역시 저축은행의 부실규모가 크거나 가격이 맞지 않을 경우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저축은행 추가 인수를 꺼리는 것은 앞서 인수한 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 회복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고 있고, 기존 여․수신 정리 과정에서 발생한 역마진 문제, 추가부실자산 발생 등으로 영업정상화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영업을 재개한지 1년이 지났지만 부실자산 정리 작업이 길어지면서 실적 부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올해 3월말 기준으로 총자산 6천357억원, 당기순이익 2억원을 기록 중이다.
3월말 현재 KB저축은행(옛 제일저축은행)의 총자산은 1조2천751억원, 당기순이익은 7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신한저축은행(옛 토마토저축은행)은 총자산 1조1천435억, 당기순이익은 137억원 손실, 하나저축은행(옛 에이스․제일2저축은행)은 총자산 8천318억원, 당기순이익 28억원의 손실을 보였다.
4개 금융지주사와 예보는 실사과정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불법대출 등 부실자산이 추가로 나타난데 대해 이를 보전해 주는 문제를 놓고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시중은행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서 산은지주와 기업은행, 농협금융 등이 새로운 인수 후보로 떠올랐지만 이들 은행이 실제로 저축은행 인수에 참여할 지는 미지수다.
산은지주 관계자는 "저축은행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거나 계획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은행 측은 "정부에서 추진할 사항이라 뭐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신충식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겸 농협은행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농협의 경우 지역조합이 저축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저축은행을 인수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에 추가로 부실저축은행 인수 검토를 요청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은 부실저축은행을 금융지주회사 등에 인수시키는 편법에 의존할 게 아니라 예보 내의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 자금을 투입해 근본적인 구조조정과 책임추궁, 예금자보호를 위한 조치 등을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 관계자는 "은행이 저축은행을 사고 싶으면 사는 것일 뿐 금융위가 나서서 사도록 할 계획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며 "만약 정부 뜻대로 할 수 있었다면 예보가 보유 중인 가교저축은행 3개도 이미 다 팔았을 것"이라고 향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부실저축은행 정리는 예보가 기존 대주주를 통해 45일 동안 정상화 기간을 주고 그 기간이 끝나면 정상화가 어려운 저축은행에 대해 자산실사를 거쳐 매각절차에 들어간다"며 "예보가 내달 중순쯤 매각공고를 낼 계획인데 입찰자가 많으면 제3자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겠지만 안 되면 가교저축은행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우량 자산과 부채만을 인수하는 P&A(부채자산이전)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하기 때문에 인수자의 부담이 적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대다수 시중은행들이 저축은행 인수를 꺼리고 있어 매각작업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