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량확인서'제조사서 떼오라고? 하늘의 별따기
제조사 내부 기준에 따라 발급 여부 결정...소비자만 발동동
IT기기나 가전제품의 교환 환불의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는 '초기불량판정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구입 후 10일 이내의 새 상품에서 중요 수리가 필요한 성능·기능상의 문제가 발견될 경우, 제품교환 또는 구입가 환급을 받을 수 있다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성능상의 하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제조사로부터 발급받아야 하는 ‘초기불량확인서’ 혹은 ‘초기불량판정서’.
문제는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서가 아닌 제조사로부터 발급받게 되는 확인서가 과연 얼마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으로 접수된 소비자 불만제보 대다수가 판정서를 받지 못해 교환이나 환불 대신 부품교체나 수리 등 조치를 받는 경우였다.
새 상품에서 발견된 먼지, 유격, 흠집, 불량화소 등의 외관불량은 ‘성능·기능상의 하자’로 볼 수 없다는 제조사 측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
제조사들은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거나 명령 인식을 못하는 등 사용 상에 큰 결함일 경우에만 ‘초기불량확인서’ 를 내주고 있다.
피해 소비자들은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때 충분히 검수단계를 거치지 않은 책임은 뒷전이고 왜 멀쩡히 새 제품을 사서 바로 수리를 받는 불이익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울퉁불퉁 노트북 키보드, 사용상 문제 없어 '교환 불가'
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사는 임 모(여)씨는 최근 구매한 노트북이 외관상 문제가 있음에도 ‘사용상의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교환을 거부당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 씨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온라인몰을 통해 도시바 노트북을 약 48만원에 구매했다. 이틀 후 배송된 제품을 개봉해 보니 키보드의 자판 스페이스바 부근 캡들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고.
▲ 키보드 일부가 불룩 튀어나와 있지만 업체 측은 수리를 안내했다.
임 씨는 외관불량으로 판단, 판매처로 교환을 문의했다. 판매처 역시 이상이 있음을 인정하며 "제품 개봉 후엔 제조사 AS센터에서 ‘초기불량확인서’를 받아야만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임 씨는 사용이력이 없는 새 제품에 이상이 있음에도 ‘초기불량확인서’를 발부받아야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쉽게 처리될꺼라 믿고 도시바 AS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AS센터 측은 “사용상에 문제가 없는 외관 불량은 반품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확인서 발급을 거부하며 수리를 제안했다고.
임 씨는 “물론 사용상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명백한 불량인데 뜯어서 재조립하자는 것이 말이 되는 경우냐”며 황당해했다.
이에 대해 도시바코리아 관계자는 “새 제품을 수리해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쾌할 수 있다고 충분히 공감한다. 결과적으로 수리 진행해 불만 요소가 해소됐지만 감정적인 기대치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내부 규정에 맞춰 진행하다 보니 모든 고객의 니즈(Needs)를 다 케어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 몸체 틈 벌어진 디카.. ‘다른 것도 다 그래 그냥 써~’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사는 박 모(남)씨 역시 카메라의 유격 문제로 제조사와 갈등을 빚었다.
박 씨는 지난 4월 30일 평소 갖고 싶었던 올림푸스 카메라(PEN E-PM1)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충분히 살펴본 후 가격이 다소 저렴한 온라인몰을 통해 약 65만원에 구매했다.
다음날 배송된 제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본 것과 달리 A4 용지가 2장은 들어갈 정도의 틈이 발견됐다.
판매자의 “제조사에서 ‘초기불량확인서’를 받아오면 교환해주겠다”는 안내에 올림푸스 AS센터측으로 의뢰했지만 “다른 제품 2개도 역시나 비슷한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 결함이 아니니 그냥 쓰라”고 답변이 돌아온 것.
2개의 제품만 보고 어떻게 하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반문하자 담당자는 “AS센터에서는 다 그렇게 판단한다”고 태연히 답한 후 박 씨에게 카메라를 되돌려 보냈다.
박 씨는 “틈이 몇 mm이상 되면 결함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다른 기기도 그만큼의 틈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기준이 어딨냐"며 “이후에도 직접 매장을 찾아 동일 모델 카메라를 봤지만 그만한 간격의 틈은 발견할 수 없었다”며 황당해했다.
이에 대해 올림푸스한국 관계자는 “AS센터 직원들은 카메라 전문가라 그들의 판단을 근거로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며 “조립 형태의 바디라 틈이 있을 수 있으며 내부에 실링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 LCD화면 속에 먼지 든 DSLR 카메라, 교환될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사는 최 모(여.34세)씨는 지난 4월 말 오픈마켓에서 캐논 DSLR 카메라 600D와 번들렌즈를 약 90만원에 구매했다.
배송된 카메라의 작동법 등을 배우기 위해 전문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은 최 씨는 사진작가에게서 "LCD 화면에 먼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액정 위에 묻어거라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LCD 화면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먼지가 끼어 있었던 것.
판매자에게 교환을 문의하자 역시나 제조사로부터 ‘초기불량판정서’를 받아오라는 설명이었다.
캐논 서비스센터 측은 “먼지는 제품 불량이 아니기 때문에 교환해줄 수 없다. LCD 판을 뜯어 먼지를 제거하면 된다”며 최 씨의 교환요청에 머리를 저었다.
최 씨는 “어느 누가 한번 사용해 보지도 않은 새 제품을 분해하고 싶겠냐”며 “새 차 범퍼에 흠집이 나 있는데 새 차 교환이 아니라 범퍼를 갈아주는 경우”라며 기막혀했다.
이에 대해 캐논 관계자는 “LCD 화면과 보호 커버 사이로 먼지가 들어간 것으로 간단한 클리닝 작업으로 해결 가능하며 이런 경우 하자나 결함이 아니라 교환 및 환불 사유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조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