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사장 면접대에 서라
최지성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실장에 임명되면 삼성그룹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일컬어지는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를 두고 해설이 분분하다.
삼성의 공식 발표는 최 부회장이 유럽발 경제위기와 날로 치열해지는 경영환경 변화에 잘 적응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최 부회장의 미래전략 실장 선임이 이재용 사장 체제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사장이 경영수업을 끝내고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설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벌써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 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 그룹을 이끌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췄을까?
이와 관련해 삼성 인사의 ‘끝판왕’이라 부리는 원기찬 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이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열정樂(락)서’라는 강연에서 한 말이 눈길을 끈다.
원 부사장은 삼성이 면접 시 가장 눈여겨보는 항목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꼽았다.
중국 당나라 시절 관리를 뽑을 때 몸가짐과 말씨, 글씨, 판단력 등 4가지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신언서판의 기록이 있다. 첫째는 身이니 풍채나 외모가 풍성하고 훌륭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言이니 언변이나 말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이다. 셋째는 書니 글씨체가 굳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넷째는 判이니 글의 이치가 우아하고 뛰어난 것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딱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적 등 밖으로 보여 지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오너나 CEO 등 기업의 수장에게는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이 사장의 경우 거대 공룡 삼성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일종의 면접 과정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끝판왕의 말대로라면 삼성은 이 사장의 신언서판을 봐야 한다. 그러려면 이 사장이 그런 점에서 어필해야 한다.
그동안 이 사장은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늘 이 회장의 등 뒤에 자리하고 말도 아꼈다. 사진 촬영에 손을 내젓고 대외적인 행사도 가려서 참석했다.
그렇다고 그가 한가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오히려 삼성의 고위 관계자 중 누구보다도 바쁜 일정을 보내며 삼성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리더십을 가지지 못 한 게 아니라 이 사장의 신중한 성품 때문에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로 인해 이 사장의 인상은 삼성맨이라기보다는 오너의 후계자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 그가 올 들어 자동차 전장사업 관련 글로벌 행보를 이어가며 애플과의 소송 전을 계기로 소신도 조금씩 밝히고 있다. 면접에 응하기 시작한 셈이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신언서판의 두 번째까지는 보여줬다. 이제는 책임자의 자리에 올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판단력을 보여줄 차례다.
재계에서는 최 부회장이 맡고 있던 삼성전자 세트부문 사업을 총괄 부회장 자리를 이 사장이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가 더 큰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됐든 이 사장을 향한 기대와 그에게 맡겨지는 책임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이 스스로 면접대에 오른다는 생각을 갖고 실력으로 삼성맨의 자격을 쟁취하길 기대해 본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