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날개 달아주는 명품 모델들

2007-10-12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유명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에서 진정한 창조의 시대는 1960년대에 끝났다. 이후는 창조적 모방의 시대다”고 말했다. 패션의 경향이나 디자인 패턴은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종 브랜드들은 매년 새로운 유행경향을 제시하는 것 이상으로 참신한 모델을 선택?기용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경우 더욱 그렇다.

명품 브랜드들이 광고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장 흔히 하는 일은 일명 ‘할리우드 스타 모셔오기’다. 할리우드 스타의 경우 대중에 이미 얼굴이 잘 알려져 있어 모델로 선정되는 즉시 화제가 되는 등 파급 효과가 크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잘나가는 패션 브랜드들은 앞다퉈 유명 스타들을 고용해 왔다. 최근 센존이 앤절리나 졸리를, 미소니가 드루 배리모어를, 지안 프랑코 페레가 줄리아 로버츠를, 루이비통이 우마 서먼을 고용했거나 고용한 것이 그 예. 일부 비판적 시각은 있었지만 대중의 눈길을 끌고, 업계에 화제를 뿌리는 데는 일단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들이 할리우드 스타를 기용하는 일이 흔해지자 잘나가는 배우들의 경우 명품 브랜드 사이를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지난 2005년 샤넬은 전속모델이었던 린제이 로한과의 재계약을 포기하는 대신 키라 나이틀리를 발탁했다.


그러자 경쟁 브랜드인 루이비통이 곧바로 린제이 로한을 전속모델로 기용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 린제이 로한의 경우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전문모델처럼 매년 샤넬, 루이비통, 미우미우 등 각종 유명 브랜드를 전전하며 쉼없이 패션광고에 얼굴을 내비치고 있어 ‘영화보다 명품 광고를 더 많이 찍는 배우’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특히 프라다의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미우는 ‘할리우드 스타 모셔오기’에 도통한 브랜드로 광고모델 하나로 최고급 명품 이미지를 다진 케이스다. 몸값 비싼 매기 질렌할, 드루 배리모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광고모델로 쓰면서 인기몰이를 한 것도 모자라 지난 2006년엔 50대 여배우인 킴 베이싱어를 기용하면서 업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반면에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샤넬은 해가 갈수록 젊은 톱스타를 기용해 젊고 발랄한 이미지를 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40대 여배우 니콜 키드먼, 애슐리 주드, 모니카 벨루치, 미셸 파이퍼 등을 모델로 세웠던 샤넬은 지난해 무려 20년이나 어린 배우 키라 나이틀리를 모델로 선택했다.


고급스러움과 고전미를 강조했던 샤넬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지만 이 변화는 보수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올 들어 샤넬은 1990년생인 에마 왓슨과 400만달러에 모델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가을?겨울부터 새 광고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실 에마 왓슨은 아직 어린 소녀 이미지가 강할 뿐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 7편 외에는 다른 출연작이 없는 신예다. 최고의 톱스타들이 선망하는 샤넬 모델로는 너무 짧은 경력이다. 하지만 샤넬의 이번 선택은 젊어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마케팅이어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또 에트로는 할리우드 스타인 밀라 요보비치를 광고모델로 선정해 눈길을 모은 바 있으며, 지미 추의 경우 파파라치를 통해 ‘할리우드의 악녀’로 거듭난 니콜 리치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대중에 강하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마크 제이콥스의 경우 평소 도벽이 있는 위노나 라이더가 백화점에서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옷을 훔치다 체포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위노나 라이더를 모델로 기용했고, 어린 여배우 다코타 패닝과 화보를 찍어 ‘파격적’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한편 할리우드 스타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모델을 광고에 쓸 때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2005년 코카인을 흡입한 케이트 모스와 계약을 파기했던 버버리는 최근 “버버리의 르네상스는 케이트 모스가 만들었다”며 그를 재기용해 엄청난 화제를 양산해냈다. 케이트 모스를 재기용해 버버리가 의외의 마케팅 효과를 거두자 롱샴, 베르사체 등도 그를 기용하려 혈안이 됐고, 결국 케이트 모스의 광고수입은 마약 파문 이후 더 늘었을 정도다.


우마 서먼, 스칼렛 요한슨 등에 이어 지난해부터 다시 전문모델을 광고에 올리기 시작한 루이비통은 유명 모델 여러 명과 광고 촬영에 돌입하며 눈길을 끈 케이스. 나오미 캠벨, 다리아 워보이, 케이트 모스 등 웬만한 비용으로는 한 명도 쓰기 힘든 톱모델을 한꺼번에 광고모델로 내세우면서 스타를 기용한 것 이상의 마케팅 효과를 봤다는 게 루이비통 측 주장이다.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이번 광고에서는 의상과 액세서리, 가방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여러 명의 톱모델을 기용하게 됐다. 럭셔리한 분위기가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미우미우 또한 지난해부터 중국 모델인 저우쉰과 동지, 일본 모델인 오타 리나 등 패션계에 흔치 않았던 3명의 아시아계 모델을 기용한 광고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에 대해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세 명의 서로 다른 아시아 모델을 광고에 썼으며 그 결과에 크게 만족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브랜드들도 최근 들어 외국 톱모델 기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LG패션의 여성복 브랜드 모그의 경우 첫시즌과 두 번째 시즌을 귀족적 느낌의 스텔라 테넌트를 기용해 큰 화제를 뿌린 데 이어 올해는 루이비통, 구치의 광고모델이었던 다리아 워보이를 기용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헤지스는 세계 모델랭킹(models.com) 5위에 올라 있는 제시카 스탐을 광고모델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LG패션 이미연 과장은 “국내 브랜드들도 외국 톱모델을 많이 선호하고 있는데 옷 소화능력이나 연출력이 뛰어나 감도 있는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통해 해외 모델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패션 피플들은 시즌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 못지않게 각 브랜드의 ‘얼굴’인 모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 보면 광고모델이 누구냐에 따라 브랜드에 대한 호응도와 매출이 달라지므로 모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스타에서 전문모델로, 백인모델에서 아시아모델로, 무난한 연령대 모델에서 파격적 연령대 모델로 급변하는 패션업체의 모델 기상도는 계속 우리의 관심을 끌며 핫이슈로 부상 중이다.


김이지 기자(ej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