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이야기>홈쇼핑 무이자 할부의 덫

2007-10-12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사은품 ○○○. 파격 10개월 무이자할부’

TV홈쇼핑을 볼 때면 어김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자막입니다. 그저 스쳐가는 자막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이 자막 하나가 약(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毒)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무이자할부는 사실상 돈을 깎아 주는 것이고, 거기다 덤으로 사은품도 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호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소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당근인 셈이죠. 자연 매출은 늘어나겠죠. 얼핏 보면 무이자할부 만큼 부진한 매출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처방약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정작 TV홈쇼핑 업체는 ‘무이자할부’ 때문에 말 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무이자할부는 소비자가 내야 할 이자를 업체가 대신 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무이자’이지만 업체에겐 ‘빚’이라는 말입니다.


100만원 하는 물건을 10개월 무이자할부로 판다고 가정해 보죠. 소비자는 100만원이라는 목돈을 한 꺼번에 지불하지 않고 한 달에 10만원씩만 10개월 동안 값아 나가면 됩니다. 이자는 ‘0원’ 입니다. 하지만 업체는 카드사에 할부수수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할부수수료가 4%라고 가정하면 100만원의 4%인 4만원을 카드사에 지불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소비자에게 4만원 가량을 깎아주게 되는 것이죠. 한 홈쇼핑 업체 임원이 “카드사만 땅 짚고 헤엄치는 꼴”이라며 농담을 던지는 이유를 알겠지요.


홈쇼핑 업체가 카드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할부 수수료와 가맹점 수수료까지 합쳐 보통 5%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이 할부로 살 때 부담하는 수수료는 20%대에 약간 못미칩니다. 개인 고객보다는 상대적으로 저금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홈쇼핑에서 무이자 할부는 전체 매출의 70%를 훨씬 웃돈다고 합니다. “무이자할부 아닌 상품이 어디있냐”는 반문이 나올 정도입니다. 게다가 할부기간이 길어질 수록 수수료율도 높아집니다. 현재는 10개월에서 12개월 무이자할부가 대부분이지만 조만간 말레이시아 처럼 24개월 무이자할부가 나올지 모른다고 엄살(?)을 부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업체의 부담은 산더미처럼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 뿐 입니까. 간혹 돈 많은 소비자가, 아니면 할부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소비자가 현금 계산할 때엔 ‘에누리’도 해줍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출은 늘어나도 이익은 줄어들 수 뿐이 없습니다. ‘아랫돌 빼다 윗돌을 괴는’ 식이죠. “안으로 곪고 있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소비자에겐 약(藥)이라는 것도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이자’라는 말에 현혹돼 “한 번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과도하게 소비지출을 늘리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무이자할부는 홈쇼핑 업체에게나 소비자에게나 치명적인 독(毒)을 갖고 있는 꽃인 셈이죠. ‘무이자할부의 덫’에 빠져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즐길 것인가는 소비자와 홈쇼핑 업체 모두 곱씹어 볼 문제 입니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