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와 궁녀 '파격대우'에 권력도 휘둘렀다
2007-10-16 뉴스관리자
궁궐 속 숨죽이며 살던 내시와 궁녀가 2007년 '부활'하고 있다. SBS TV '왕과 나'가 내시들의 삶을 집중 조명하면서 먼저 테이프를 끊은 데 이어 이번에는 영화 '궁녀'가 18일 개봉한다.
왕과 왕실의 수족으로 실제로는 알려진 것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나름의 권력도 휘둘렀을 내시와 궁녀지만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사극에서 그들은 늘 변방에 위치했다. 그러나 올 가을 '왕과 나'와 '궁녀'는 내시와 궁녀를 전면에 배치하며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그들의 욕망과 꿈, 삶을 조명하는 것.
오랜 세월 관심권 밖에 있느라 이들의 삶 위에 두텁게 쌓였던 먼지를 걷어내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특수효과가 필요 없는 판타지로 다가온다.
◇'왕의 그림자' 내시
15일 '왕과 나'에서는 소화와의 합궁을 앞둔 성종에게 내시가 침과 뜸을 놓는 장면이 방송됐다. 또 성종이 합궁체위 그림이 담긴 옥방비결(玉房秘訣)이라는 서책에 대해 내시의 강론을 듣는 모습도 담겼다.
'남자 구실'을 못하는 내시지만 왕에게 합궁을 위한 비결을 가르친 것. 왕의 그림자로서 왕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한다.
극중 내시부 수장 조치겸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의 역할모델은 실제로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남아 있는 전균이라는 내시다.
조치겸을 연기하는 전광렬은 "조선시대 실제로 있었던 전균이라는 내시가 극중 조치겸과 비슷하게 권세와 야심이 있었던 인물"이라며 "드라마를 앞두고 전균에 대해 연구했는데 후궁을 책봉하는 데도 관여하고 왕실의 재산도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로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왕과 나'는 판내시부사인 조치겸을 통해 웬만한 조정 대신보다도 큰 권세를 휘둘렀던 내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동안 사극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게 그려졌던 내시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내시가 어떻게 키워지고 발탁되는지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양물을 자르고 내시를 선발하는 과정, 왕의 최측근으로 호위는 기본이고 온갖 은밀한 일을 해야 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왕의 여자' 궁녀
'왕과 나'가 내시의 위상을 높였다면 '궁녀'는 궁녀들의 살 떨렸던 삶을 조명한다. 스릴러와 호러를 혼합한 장르인 까닭에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온갖 규율과 벌칙이 등장한다. 4~10세 어린 나이에 입궐한 후 15년 동안 궁중 법도와 학문 등을 익혀 '왕의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궁녀들에게 승은을 입는 것은 공통적인 꿈. 영화 '궁녀' 역시 승은을 입으면서 삶이 바뀌어버린 궁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영화가 주력한 것은 그보다는 궁녀들의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던 삶과 혹독했던 형벌이다. 왕실의 재산에 손을 댄 죄로 손목이 잘리고 함부로 입을 놀려 혀가 잘리는 형벌이 내려진다. 이 과정에서 그간 사극에서 익히 보아왔던 고문 방법 외에 질식사시키는 '도모지'와 다리에 상처를 주는 '끈치기' 등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중 압권은 '쥐부리글려' 의식. 어떤 상황에서건 입조심을 강조한 행사로 보는 이에게도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특수효과 없는 판타지
'왕과 나'는 내시 양성과정 등을 보여주며 선정성 논란을 낳았고 '궁녀'는 잔인한 형벌장면으로 인해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양측 제작진은 이구동성으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했다"고 말한다. 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대본, 시나리오를 작성했다는 설명.
그러나 익숙하지 않았던 내시와 궁녀의 삶과 꿈은 현대인에게 판타지로 다가온다. 그 낯섦과 생경함이 SF영화들의 판타지를 무색케 하는 것.
이러한 볼거리와 함께 '왕과 나'와 '궁녀'는 그동안 변방에서 숨죽이고 있던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들 역시 역사의 바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욕망이 있는 인간이었음에 방점을 찍는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