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을 중국의 四神이 지킨다?

2007-10-18     뉴스관리자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환웅의 수호자로 세상에 왔다가 환웅의 환생인 광개토왕을 돕는다고 돼 있다. 환웅은 우리 민족의 하늘에서 온 우리 민족의 신이다. 그런데 그를 보좌하는 사신(四神)은 중국의 신이다."

2006년과 2007년 TV드라마는 고구려의 시작과 끝을 훑었다. '주몽'이 고구려의 건국을 그렸다면 '대조영'은 고구려의 멸망과 그 유민들이 우여곡절 끝에 발해를 건국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방영을 시작한 태왕사신기가 고구려의 최전성기인 광개토대왕대를 다룸으로써 고구려를 다룬 TV드라마는 완결성을 더하게 됐다.

그러나 역사가 아닌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가 된 고구려를 바라보는 역사학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대중의 관심은 반갑다. 그러나 글자 하나를 두고도 몇 십년 씩 논쟁을 벌이는 학자의 눈에 드라마 속 픽션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기엔 도가 지나치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김현숙 연구원은 19-20일 호서사학회 등이 청주대에서 개최하는 공동학술대회에서 고구려 드라마를 바라보는 역사학자들의 심정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다.

김 연구원은 미리 공개한 발표문 '역사적 관점에서 본 고구려 드라마-태왕사신기를 중심으로'에서 "고구려사 알리기에 대해 역사학계는 드라마 제작진과 방송국에 빚을 졌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 그러나 고구려 관련 드라마의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며 문제점을 밝혔다.

그는 태왕사신기의 문제점으로 '사신신앙의 근원', '광개토왕대 고구려의 권력구조에 대한 오해', '왕위 계승 문제', '5부에 대한 오해' 등을 지적했다.

당시 고구려는 중앙집권화가 완성돼 모든 병력이 국왕에게 집중됐다. 귀족이 각자 사병을 거느리고 상호 대결하는 시기는 6-7세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하가 왕보다 더 많은 사병을 보유한 것으로 그린 태왕사신기는 고구려 권력구조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당시 고구려는 이미 장자 상속제가 정립돼 있었다. 아들이 없는 경우 형제에게 상속되기도 했으나 드라마에서처럼 외손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강요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드라마에는 당시 소노부, 절노부 등 5부가 존재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3세기 후반 국왕의 권한이 강해지자 나부(노부)가 해체되고 귀족은 왕도로 집결해 동, 서, 남, 북, 중부로 표기되는 방위명부에 거주하게 됐다.

나부가 존속한 시기 귀족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가졌지만 방위명부로 편제된 이후 관료 성격의 귀족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태왕사신기에서처럼 고국양왕이 태자인 담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할 처지에 몰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사신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별자리에서 비롯된다. 중국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4천년께 신석기 때부터 사신의 초보적인 형태가 나타난다. 중국의 사신 인식은 기원전 3세기-1세기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신의 형태로 정착됐다.

즉 사신신앙 자체가 고구려의 독창적인 것이 아닌 중원에서 수입된 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의 과반을 지배한 것으로 설정된 쥬신제국과 더불어 중국의 동북공정식 역사논리에 빌미를 제공할 소지가 많다.

김 연구원은 "극단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로 나가다 보면 역사 속의 세계도, 사상도, 문화도 모두 하나가 돼 버리고 그 속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는 도리어 존립 공간을 잃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비록 드라마지만 중국의 사신을 빌려와 광개토대왕의 수호신으로 삼는 것은 고구려 산성을 중국의 만리장성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 동북공정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