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설계사가 '고아' 가입자 만들어 찬밥 방치
10명중 6명 1년 안에 퇴사나 이직..수당 제도 개선 시급
보험 계약 후 수당을 챙기고 퇴사를 하거나 이직하는 '철새' 설계사로 인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가입자들의 원성이 높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보험금 청구 등 사후 관리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
보험설계사 정착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년 이상 근무한 보험설계사 정착률(생보와 손보 평균)은 총 39.9%로 아주 저조하다. 결국 보험 가입자 10명 중 6명이 1년 안에 '부모 잃은 고아’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설계사의 이동이 잦은 이유로 업계 전문가들은 '보험 모집수당 선지급 제도'를 꼽았다. 담당설계사가 퇴사를 하거나 이직 후 계약자들이 이관된 설계사로부터 제대로 된 관리를 기대하기 힘든 것 역시 계약 수당에 비해 관리 수당이익이 크게 낮기 때문.
일부 보험사들의 경우 이렇게 빈번하게 퇴사하는 설계사를 핑계로 불완전판매 등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 역시 빈번하다.
경기침체 심화와 보험업계의 구조조정 등으로 더 많은 철새 설계사를 양상하고 있는 터라 모집수당 선지급 제도 개선 등 관련 정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담당 설계사 퇴사하면 찬밥 취급?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에 사는 백 모(남.28세)씨는 담당설계사의 퇴사로 보험사 측의 외면을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백 씨에 따르면 그는 2년 전 집사람 친구의 누나를 통해 L손해보험의 저축성 갱신보험에 가입했다. 특히 이 상품은 '적립금'이라는 특별 조건이 있었다고.
보험료가 갱신될 때마다 상승하는 특약 보험료를 대체 충당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미리 보험사에 납부하고 미리 납부한 적립보험료는 복리이자로 매년 이자가 붙어서 늘어나게 되는 구조.
이렇게 쌓인 적립금은 적금처럼 빼서 쓸 수 있으며 1년 뒤 해지하더라도 납입금액의 60~70%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설계사의 설명에 100% 환급이 아니어도 손해 보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백 씨는 부부동반으로 가입했다.
‘1년 후 적립금 10만원’이라는 약관 내용에 대해 설계사에게 문의하자 “1~2년 뒤엔 숫자 0이 두 개 더 붙어서 1천만의 적립금을 받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최근 지출금액이 많아 보험 유지가 힘들어진 백 씨는 보험사 측으로 해지 환급금과 적립금을 확인한 후 황당함을 감추기 못했다. 적립금은 8만원밖에 되지 않았고 해지 시 환급금도 0.9%에 불과했던 것.
백 씨가 처음 안내받은 해지환급액을 요구하자 업체 측은 “담당 설계사가 퇴사했으니 담당 설계사와 개인적으로 해결하라”고 책임을 미뤘고 설계사 역시 “퇴사했으니 보험사와 이야기하라”고 발을 뺐다고.
백 씨는 “보험가입 시 설계사의 불완전판매를 걸러내지 않고 마구 계약해 실적 올려놓고 이제 와 모든 책임은 설계사 탓이냐”며 “이런 식이라면 설계사 퇴사 시 내 보험계약도 무효화 해주는 게 공평한 거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L손해보험 관계자는 “확인 결과 가입서와 제대로 된 설명을 숙지했다는 등의 각종 구비서류에 자필서명이 있는 완전 판매에 해당돼 설계사의 실수를 확인하거나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지금 바로 계약해지할 경우 손해가 커 기존 보험료를 감액하여 유지하는 걸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 씨는 “부부가 1년동안 500만원이 훌쩍 넘는 보험료를 납부하고 해지 환급금으로 30만원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억울함을 전했다.
이어 “주변 보험설계사 지인이 계약 내역을 보더니 잘 모르는 어린 애들 갖다 장난친 것”이라며 “가입 당시부터 환급받을 수도 없고 보장받는 혜택도 적은 보험이라고 혀를 차던데... 결국 보험료 받아먹고 입 닦을 작정으로 가입자를 유치시킨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 수당 나올 구멍 없는 가입자는 짐짝?
부산 사하구에 사는 박 모(남.39세)씨는 담당설계사 변경요청을 단박에 거절당했다며 보험사의 이기적인 운영방식을 꼬집었다.
박 씨는 지난 5년 전 D화재 보험설계사와 친분을 쌓게 되면서 운전자보험, 실손보험 등 4건의 보험에 가입해 계약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최근 부산의 다른 지역에서 사하구로 이사를 하게 된 박 씨는 집과 가까운 지점의 설계사로 담당자를 교체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기존 설계사의 동의를 얻어 한 달 가량을 기다렸지만 정상적인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 알게 돼 본사 콜센터로 민원을 접수했다.
그러나 기존 지역의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상대 지점에서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설계사에게 수당도 많이 지급됐고 그동안 보상도 여러 차례 받았으니 못마땅하면 해약하라”는 식의 인신공격성 발언을 들었다는 게 박 씨의 주장.
박 씨는 “너무 화가나 지점에 직접 찾아가서 항의하자 경찰서에 업무방해로 신고했고 경찰관이 중재에 나서자 그제야 변경해 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편의를 위해 설계사 교체를 요구했을 뿐인데 개인적인 신상을 들먹이며 이전에 지급된 보험금 기록까지 운운했다”며 “매달 20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해 왔는데 수당이 나오지 않는 가입자는 고객이 아닌 모양”이라고 토로했다.
현재는 새로운 설계사가 지정된 상태다. 한편 D화재 관계자는 이번 사례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보험 설계사 정착률 여전히 낮아...생보사 < 손보사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3일 발표한 보험설계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생명보험 부문에서 설계사 정착률 가장 낮은 곳은 ACE생명으로 11.7%에 불과했다.10명의 설계사 중 겨우 1명이 1년 이상 이동 없이 근무한다는 의미다.
이어 라이나생명이 23.9%, 미래에셋이 30.4%로 뒤를 이었다. 반면 삼성생명 41.2%, 푸르덴셜이 51.7%로 평균치를 상회했다.
손해보험사는 생명보험사들보다는 평균 정착률이 훨씬 높았다. 또한 생명보험사들이 업체 별 큰 차이를 보인데 반해 손보사들은 비교적 비슷한 정착률을 보였다.
그린손보가 35.0%로 가장 낮았으면 흥국화재, 삼성화재가 41.8%, 46.8%으로 뒤를 이었다. LIG손보가 48.6%, 현대해상이 48.7%로 다른 보험사에 비해 정착률이 다소 높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조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