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만 문제? 생활가전 소음 더 못견뎌
하자 판단 기준조차 없어...'저소음 표시제' 시행은 차일피일
최근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간 다툼이 벌어져 사람이 죽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소음은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일으키며 고통을 준다.
아파트 생활자들에게 층간 소음 뿐 아니라 또다른 골치거리가 바로 생활가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다. 거실과 주방 등 주로 트여있는 한 공간 안에 가전 기기들이 설치되는 구조이다보니 소음 차단이 쉽지 않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은 모터로 인해 작동하는 제품 특성 상 가동 중 일정 소음이 발생한다. 문제는 소음의 정도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일상 생활을 방해할 지경에 이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 사용자들의 이런 고통은 '예민한 개인반응'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다. 제품 하자를 판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보니 사용 중 발생하는 소음을 두고 제조사와 소비자간의 끝없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제조사들 역시 명확한 규정이나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 구체적 대책 마련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해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접수된 가전제품 소음 관련 피해는 100여건이 넘었다.
◈ '우당탕탕~' 천둥 소리나는 냉장고, 수리해도 꿈쩍 안해
22일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김 모(여)씨는 냉장고 소음 문제로 6개월이 넘는 긴 시간동안 애를 태우고 있다. 지난 7월 150만원에 구입한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에서 구입 직후부터 참기 힘든 소음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
마침 구입 후 2주가 되지 않아 홈바 불량으로 수리를 요청을 하면서 소음 개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수리 이후 소음은 더 커졌고 '원인불명'이라는 진단만 내려졌다고. 당장 방법이 없자 애써 소음을 참고 제조사의 후속 조치만을 기다렸다는 김 씨.
그러나 몇 달 뒤 냉장고 PCB불량건으로 수리를 받으며 다시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음의 강도는 점점 심해져 온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2시간 간격으로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대는 냉장고 소음을 더는 참을 수 없어 콜센터로 문의한 결과 '환불 가능' 확답을 받아 문제는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확인 차 방문한 기사는 대뜸 콜센터의 결정을 번복하며 부품을 교체하며 계속 사용할 것을 권유했다고.
김 씨는 "구입 후 6개월간 반복적인 수리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해결은 커녕 더 심해지고 있다. 거실에 있는 냉장고 소음 때문에 부엌에서도 놀랠 정도면 말 다 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볼 때마다 '딱~딱' 소리나는 TV, 무조건 정상?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정 모(남)씨 역시 지난 10월 구입한 LG전자 스마트 TV 소음 문제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33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제품에서 TV 시청시마다 5분을 주기로 '똑딱'하는 소리에 여간 신경에 거슬리는 게 아니였다고.
곧바로 AS문의했지만 담당기사는 '화면 내 패널이 열에 의해 팽창을 하면서 내는 소리로 지극히 정상'이라고 설명했다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작은 소음이 아닌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큰 데시벨의 소음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사용 설명서에도 해당 내용이 명시돼있기 때문에 하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사용설명서 상에 소음의 어느 정도가 '정상'인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어 판단이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 씨의 불만.
결국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끝에 무상 교체를 받았고 지금도 간헐적인 소음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전보다 횟수나 크기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정 씨는 "이용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실제 소음을 측정하는 등의 객관적인 확인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가전 제품의 소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문제를 훨씬 수훨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 '저소음 표시제' 도입 된다더니...해외 사례 '성공적'
이처럼 가전 제품 소음 문제 관련 분쟁 사례는 대부분 명확한 결론을 맺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 중이다. 소비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피해에도 객관적 입증이 어려워 그저 제조사의 처분에 기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보니 불만이 높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은 공장, 공사, 교통, 항공기 등 생활 소음에 대한 기준과 규제는 명문화 되어있지만 층간 소음이나 가전제품 등 실제 주택 내에서 겪게 되는 소음과 관련해서는 기준이 없어 분쟁 발생시 처리와 책임 규명이 명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돼자 환경부는 지난 2011년 '제2차 생활소음줄이기 종합대책(2015년까지)'의 일환으로 '소음진동관리법 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2013년부터 '가전제품 저소음 표시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가전제품 저소음 표시제'란 가전제품 생산 및 수입업체에서 환경부에 '저소음표지' 부착을 신청할 경우, 소음도 검사를 거쳐 기준에 부합하면 부착할 수 있는 자발적 제도를 말하는 것.
환경부는 2012년까지 소음 기준을 제정하고 이듬해 시행을 예고했지만 관련 법안은 2013년 2월 말 현재까지 국회 계류 중인 상태로 시행년도 역시 2014년으로 미뤄졌다.
반면 생산 및 수입업체는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강제'조항이 아닌 '자발적'제도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무사항이 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투자를 유발에 경쟁력을 낮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는 지나친 기우임을 알 수 있다.
중국, 호주, EU,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미 구체적인 대상 품목과 평가 기준 등을 세워 가전제품 소음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가전제품 소음 표시제(등급) 및 휴대용 음향기기 최대 음량 권고 기준 등을 세워 소비자들의 선택권 확보, 저소음 제품 개발 유도 및 제품의 수출 경쟁력 상승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유명 가전 매체인 어플라이언스 매거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저소음 기능이 탑재 된 제품을 사기 위해서 추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해 저소음 가전에 대한 관심과 수요 역시 높았다.
최근 국내 일부 가전업체에서도 청소기, 세탁기 등 대표적인 고소음 가전 제품군을 중심으로 저소음 기능을 강조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건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