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재벌 조세피난처 250개 법인보유…"우린 결백"

2013-05-23     이호정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이호정 기자]최근 검찰이 CJ그룹 역외탈세와 관련해 조세피난처 법인설립 현황과 자산내역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착수하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22일 전 경총 회장인 이수영 OCI 회장 부부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장남 조현강 씨 등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까지하자 일부 기업들은 패닉상태에까지 빠졌다.

23일 재벌 및 CEO 경영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에 따르면 국내 20대 그룹 중 11곳이 파나마 등 카리브해 일대에 총 250개 종속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기업들은 한결같이 "단순히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캄퍼니라는 이유 때문에 불법으로 몰아 마녀 사냥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강조했다. 모두 "사업상 불가피하게 설립된 회사들이기 때문에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업종별로는 해운업이 232개로 전체의 96%를 차지했고, 그룹별로는 STX와 한진, SK가 가장 많은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파나마에만 231개 종속기업이 몰려 가장 많았다. 이어 케이만군도가 10개, 버뮤다와 모리셔스, 사이프러스, 버진아이랜드가 각각 2개, 마샬아일랜드가 1개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STX(대표 강덕수)가 94개로 가장 많아 1위를 차지했다.

STX는 그룹 소유로 4개, STX팬오션(대표 배선령) 소유로 90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94개 페이퍼컴퍼니의 소재지는 모두 파나마로 확인됐다. 2위는 총 7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한 한진(대표 조양호)이 차지했다.

한진은 그룹 소유로 2개, 한진해운(대표 김영민) 산하에 76개, 한진중공업(대표 최성문) 산하에 1개의 퍼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총 79개의 페이퍼컴퍼니 중 77개는 파나마 소재였고, 나머지 2곳은 사이프러스에 설립됐다.

3위는 SK(대표 최태원)로 총 5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는 상태다. SK는 SK해운(대표 백석현)이 51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SK텔레콤(대표 하성민)이 4개, SK이노베이션(대표 구자영)이 3개, SK에너지(대표 박봉균)가 1개였다.

지역은 파나마가 51개로 가장 많고, 케이만군도에 7개, 버뮤다에 1개가 존재했다.

뒤를 이어 LG(대표 구본무)와 현대중공업이 각기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했다.

LG는 파나마에만 4개의 종속기업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대중공업은 파나마에 2개, 모리셔스와 마샬아일랜드에 각각 1개씩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포스코(대표 정준양)가 3개, GS(대표 허창수)가 2개, CJ(대표 이재현)와 삼성(대표 이건희), 현대차(대표 정몽구), 롯데(대표 신동빈)가 각각 1개씩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업종별로는 해운업이 93%에 달하는 232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이 이처럼 페이퍼컴퍼니를 많이 설립한 것은 선박을 직접 보유하는 게 아니라, 대주사를 통해 선박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해운사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은 업종의 특성과 함께 대주사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며 “해운사가 부도 등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선박이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대주사들이 통상적으로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한다”고 설명했다.

즉 해운업계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은 해운사 입장에선 선박을 구입할 경우 재무상 부채로 잡히는 만큼 유동성 확보 및 리스크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며, 대주사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윈-윈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해운노선으로, 모든 해운사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법인이 많은 것”이라며 “SPC는 법인설립 전 한국은행에 신고하고 운영실적을 분기별로 국세청에 보고하는 만큼, 차명비자금 형성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SK그룹 관계자 역시 “SPC는 설립과 청산이 편하다는 장점과 함께 펀드처럼 신속하게 투자하고 수익 공유가 가능해 해외 파트너와 합작할 때 용이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SPC를 많이 설립하는 파나마 등 택스세이브 지역이 조세피난처로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여타 기업들 역시 비슷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사업 수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설립한 현지 법인들이 대부분인데 일부 불순한 목적의 페이퍼컴퍼니 때문에 도매금으로 취급당하고 있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본사가 한국에 있는 만큼 수익을 한국으로 집중시켜 국내에서 세금을 내고 있다”며 “세제상으로 봤을 때 조세피난처를 통해 수익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억울한 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중에서는 타 국가 사업장 운영 및 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도 있었고, 현지기업 인수 과정에서 딸려온 경우도 존재했다.

LG전자의 경우 파나마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4곳 중 2곳은 북미와 중남미 지역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롯데쇼핑이 케이만에 보유한 페이퍼컴퍼니는 2009년 해외비전 선포 후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함께 인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케이만에 존재하는 법인은 조세피난의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라며 “2008년 인도네시아의 대형마트 체인인 마크로(Makro)를 인수하면서 딸려온 것으로 현재 법인 철수를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